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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합의 한달①] “영하 18℃에도 소녀상 곁 못떠나”… 日 철거공세 막는 노숙 대학생들
밤새고 출근하는 30대, 20대 커플도 동참, 아이 데리고 온 엄마 “미래세대 산교육장”
노숙 한달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들…사상 최강 한파에도 29일간 소녀상 곁 지켜
가장 괴로운 것 추위…밥차ㆍ시민농성단 “시민 성원 있어 견뎠다”
소녀상 철거 없다는 정부 확답 없이 못떠나…일반 시민 참여폭 확대할 것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지난해 12월 30일, 처음 소녀상 옆에 자리를 펴고 노숙농성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하루이틀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한 달을 끌고 왔네요. 맹추위가 아무리 힘들게해도 한ㆍ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전향적 변화가 없는 한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 중입니다.”

27일 본지 기자와 만난 김샘 한일협상안폐기대학생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지난 한 달간 ‘소녀상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며 느낀 점과 향후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말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9도까지 떨어진 27일 아침 대학생들이 침낭 속에 몸을 눕힌 채 소녀상 옆을 지키고 있다. 이날까지 벌써 29일째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사진=헤럴드경제DB]


김 대표를 비롯한 대학생들은 한ㆍ일 양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안을 발표한 지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30일부터 현재까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소녀상) 부근에서 노숙하며 농성 중이다.

그는 지킴이들을 가장 많이 괴롭힌 것은 추위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영하 18℃의 한파가 지나간데다 농성 25일째를 넘어서자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고, 몸살을 내내 달고 있는 분들이 허다하다. 침낭은 물론 이불과 담요를 겹겹이 덮고 비닐을 그 위에 둘러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는 밤샘 농성을 하는 대학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강추위도 대학생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이들의 건강을 걱정해 경찰측과 소녀상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 텐트를 설치하는 것을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김 대표는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소녀상 바로 옆에서 지키는 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시민들의 성원이야말로 가장 큰 우군이다. 김 대표는 “먹거리와 음료, 핫팩 등을 보내주시는 시민들이 많고, 지난 24일에는 밥차까지 지원해줬다”며 “소녀상 뒷편에 정리된 각종 지원품을 바라만 봐도 든든하다”고 말했다.

노숙농성에 나서고 있는 대학생들은 매일 당번을 정해 시민들에게 소녀상의 설립 배경 및 세부 사항, 의미 등에 대해 설명한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실제로 대학생들과 체온을 나누며 밤새 함께하는 시민들도 있다. 매주 수ㆍ금ㆍ토요일이면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농성단’ 소속 멤버들이 노숙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노숙시위가 끝난 다음날 아침 바로 출근하는 30대 남성부터 기념일을 맞아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참여했다는 20대 커플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새벽부터 많은 눈이 내렸던 지난 26일, 많은 시민들은 소녀상 옆 농성장을 지나칠 때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에도 잠시 멈춰 “추운데 수고가 많다.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남겼다. 방학 중인 초등학생 두 딸을 데리고 왔다는 남순숙(47ㆍ여)씨는 “내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대학생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학생들의 노숙농성이 한ㆍ일 정부간 합의안의 모순점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의식을 표면화시키는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합의 발표 초기에는 일본의 법적 배상과 총리의 직접 사과라는 핵심 내용이 빠지고, 오히려 소녀상 철거안 협의 등 각종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자칫 정부의 일방적인 논리에 따라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며 “대학생들이 직접 노숙농성 등의 행동을 통해 합의의 모순점에 대해 제기하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궁극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기반을 닦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침낭 속에서 밤새도록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대학생.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사진=헤럴드경제DB]


최근 이들 대학생 중 6명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 씨는 “조사 당시 경찰측에서 주로 문제삼았던 점은 각종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쳐 미신고 집회를 실시했다는 점이었고, 모두 묵비권을 행사했다”며 “현재 민변과 함께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또, 벌금형 등이 결정될 경우 성금 모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취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그는 “합의 당시 양국이 소녀상 처리 방안에 대해 협의한다 명시했고,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정부는 그제서야 민간과 관련된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번복을 계속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입장이 불명확한데, 갈수록 일본 내에서는 소녀상 철거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결코 소녀상 곁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대책위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소녀상을 지키는 일에 더 많은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오는 30일 ‘0130 한일합의 무효선언 국민행동의 날’ 행사를 시청앞 광장에서 실시할 것”이라며 “우리의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노력에 좀 더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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