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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하는 그대여 주저하지 말게”…‘한국 연극계 거목’ 백성희 영면하다
-고 백성희 영결식 12일 백성희장민호극장서 엄수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나는 이 길을 왔어. 다른 어떤 길도 아닌 배우의 길을.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이 길을 죽을 때까지 가는 거야. 그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평생 모르는 채로 말이야.” <2004년 백성희 자전적 연극 ‘길’ 中>

“주저하지 말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곧장 가게. 그러면 거기 극장 문이 열리고 관객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90살이 되도록 무대에 섰던 그가 어디선가 자네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네. 무대에 서기를 열망하는 자들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고 백성희 선생에 바치는 연출가 이윤택의 조시(弔詩) 中>

영결식 모습.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한극 연극계 거목’ 고(故) 백성희(1925-2016)의 대한민국연극인장 영결식이 12일 오전 10시 백성희장민호극장(서울 용산구 청파로)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은 유족과 연극계, 문화예술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영결식 사회를 맡은 연극배우 손숙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연극배우 백성희 선생님을 보내드리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였다. 우리들이 사랑했던 연극배우 백성희 선생님이 누워 계신다“며 “무대 뒤는 조명이 켜지지 않으면 캄캄한 어둠이다. 막이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몸을 가늘게 떨면서 간절히 기도하던 백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막이 오르면 꼿꼿한 자세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관객을 압도하셨다”고 말했다.

짧은 묵념을 가진 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백성희의 70여년 배우 인생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어 배우 박정자가 최근 발간된 ‘백성희의 삶과 연극’에서 일부 발췌한 글을 7분 가량 추모 낭독했다. 

백성희 생전 모습. [사진제공=국립극단]

생전 백성희의 사진들과 주요 작품 속에서의 모습, 인터뷰 등을 엮은 영상을 보여준 후 조사(弔詞)가 이어졌다.

조사는 생전에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연출가 손진책(전 국립극단 예술감독)과 배우 김금지가 맡았다.

손진책은 조사를 읽기 전부터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장민호 선생님도 떠나고 선생님마저 떠나셨으니 이 극장은 이제 전설의 극장으로 남게 됐다. 한결같이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선생님을 떠나 보내는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며 울먹였다.

그는 이어 “백 선생님은 대한민국 연극 역사의 주춧돌이며 산 증인이었다. 그런 선생님과 한 무대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선생님은 인자한 어머니 같았지만 또한 강하고 당당한 여배우였다. 흐트러짐없이 연습장에 들어오는 선생님 모습은 후배들로 하여금 연극하는 자세를 다짐하게끔 했다”고 회상했다. 조사를 읽어내려가며 결국 눈물을 터뜨리자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김금지는 “선생님을 뵌 지도 60년이 돼 간다. 선생님은 저에게 연기 교과서였다. 정확한 대사전달, 장단음의 올바른 처리, 충분히 표현하되 과하지 않은 감정 전달 등 선생님은 연습장에서도 제 목표였다.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예의를 다해 후배들을 존중해 주시고 늘 꼿꼿하시고 품위 있으셨던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조사를 낭독했다.

조사가 끝난 후 안숙선 명창은 연출가 이윤택이 쓴 조시를 바탕으로 조창을, 소리꾼 장사익은 고인이 출연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의 동명 주제가를 부르며 고인을 기렸다.

영결식 후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손진책 연출의 만가와 씻김굿으로 노제가 진행된다. 이후 고인은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영면한다.

한편 향년 91세 나이로 지난 8일 별세한 배우 백성희는 17세에 빅터무용연구소 연습생, 빅터가극단 단원을 거쳐 18세가 되던 1943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으로 입단, 같은 해 연극 ‘봉선화’로 데뷔했다. 1950년 국립극장 창립단원으로 합류한 이후 약 4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는 등 70여년을 연극 외길에 바쳤다.

1972년 국립극단 사상 최초로 시행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국립극단 단장에 선출됐으며, 리더십을 인정받아 1991년 다시 한번 국립극단장에 추대됐다.

2002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2010년에는 국내 최초로 배우 이름을 딴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 되며 같은 해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 연극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한 백성희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최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백성희의 대표작으로는 ‘봉선화(1943)’, ‘뇌우(1950)’,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씨라노 드 벨쥬락(1958)’,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달집(1971)’,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메디아(1989)’ 등이 있다.

특히 고인은 90세를 앞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연극 무대에 올라 영원한 현역임을 과시했다. 2011년 3월에는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으로 국립극단이 제작한 ‘3월의 눈(작 배삼식, 연출 손진책)’에 출연했고, 2013년에는 ‘바냐아저씨’ 무대에 올랐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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