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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빌려쓰는 서울 한옥의 아름다움
<빌린도시>의 저자 시모네 카레나가 말하는 공공 공간의 의미

▲ <빌린 도시>의 저자 시모네 카레나
우리는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즉 도시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빌린도시>(Borrowed City)의 저자 시모네 카레나는 빌린 도시를‘시민들이 그들의 사적 편익을 위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먹고 자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공공 공간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도시 사람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거리를 마주하게 되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을 한다. 때론 공원을 걷기도 하고 바다나 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도시가 빌딩과 각종 가게들로 채워져 있고 그 속에 자신의 것은 없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는 도시를 빌려 쓰고 있는 중이다. 물론 빌려 쓰고 있으니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공공 공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동시에 나의 것이 된다.

2015년 11월 1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컨퍼런스’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에 등장한 시모네 카레나에게 ‘빌린도시’ 사용법을 들었다.  열린 컨퍼런스 ‘리빙 라이브러리’는 주요 연사들이 ‘사람 책’이 되어 시민 독자들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이 날 '사람책'으로 등장한 시모네 카레나(그는 자신의 책 표지와 같은 문양의 옷을 입고 책처럼 등장했다)는 이탈리아 건축사로 모토엘라스티코 소장이자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디지털 미디어 & 스페이스 디자인 교수로 한국의 삼청동 한옥에 살고 있는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또한 KBS 인간극장에서 <파스타, 한옥에 빠지다>편에 출연한 유명인(?)이기도 하다. 자신이 한국에 살면서 느끼게 된 문제의식을 책에 담아내 화제가 됐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빌린도시>이다. 그는 책에 담긴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빌린도시’라는 개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당시, 길거리에 묶여있는 손수레나 포장마차를 보고 과연 저것이 공공재인지 아닌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다. 그런 생각이 점점 발전하면서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공간 즉, ‘공공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는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공공 공간은 상업적 사용이나 여가를 위한 공간까지 그 형태는 매우 정교하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공공 공간을 어떠한 방식이든 이용하는 순간 우리는 나 이외의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시모네 카레나 역시 이런 협상의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연히 삼청동을 지나다 한옥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건축가로 활동한 그는 오래된 한옥을 구입하고 한옥에서 살기 위해 보수 공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옥을 구입하는 경우는 대부분 갤러리나 찻집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종로구청을 찾아가 공사계획을 내밀었을 때, 투기 목적인 줄 알고 승인을 거부당했다. 대지엔 정해진 규정이 있고 이에 따라 일정 높이 이상으로 건물을 세울 수 없다. 그런데 낯선 외국인이 낡은 한옥을 사들여 보수 공사를 한다니 투기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모네 카레나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한옥을 어떻게 보수하고 사용할 것인지 설득을 하고 다녔다. 집은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거리에서 보이는 건물의 모습은 ‘공공 공간’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때문에 시모네 카레나는 한옥 담벼락 아래 평상을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지나가다 다리가 아픈 사람들이 앉아서 쉬면서 한옥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빌린 도시의 개념은 사적 소유를 공공재로 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이 도시에서 빌린 것이고 빌린 공간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빌려 쓰는 물건을 소중히 썼다가 돌려줘야하는 것처럼 빌린 공간을 사용하는 동안 공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보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모네 카레나에게 그 보답은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였다.

시모네 카레나는 구청과 기나긴 협상 끝에 일부 계획의 수정을 거쳐 보수 공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주민 상호 간 합의에 따른 결과가 법을 우회하여 적당히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시모네 카레나는 이 대목에서 합의와 협상의 과정은 지난했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도시를 빌려 쓰기란 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을공동체 사업 또한 동네, 공원 혹은 주민들의 거리를 빌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주민들과 그들의 시간, 그리고 문화를 빌리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기나긴 합의의 시간과 끈질긴 협상의 자리를 만드는 모든 행위들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빌린 도시의 사용법에서 배울 수 있었다.

오래되고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짓자는 목표로 공사를 했다는 그. 그는 한국에서 한옥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라는 식의 주장처럼 들려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전쟁을 겪으면서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한옥 집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한옥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탄생 시켰다. 한옥이 재발견되면서 이제는 삼청동이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동네가 되었다. 시모네 카레나의 집에는 여행객들이 몰려와 커피를 마시고 하루 종일 수다를 떨며 사진을 찍어 간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다음에 빌릴 도시는 무엇인지 기대가 되었다.

[나는 서울시민이다=안중훈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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