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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험! 현장] 서약하면 9명 살리는 장기기증 오해와 진실
장기기증 서약해보니…“‘산 채로 장기 적출’ 두려움은 말도 안돼”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장기기증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당장 산 채로 장기가 ‘적출’당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세요.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죠.”

연말연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물질적인 기부 외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게 장기기증이었다. 비록 내 ‘육신’은 죽어 없어질지언정 누군가는 내 덕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선뜻 기증 서약을 하기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지난해 기준 장기기증 희망자는 143만6116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였다. 올해 15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지만, 15년여에 걸친 누적 인원임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적은 숫자다. 24일 본지 기자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아 장기기증에 서약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24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사랑의장기기증)에서 만난 김동엽 실장은 서약을 앞둔 기자가 평소 장기기증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털어놓자 이렇게 답했다. ‘뇌사 판정이 잘못돼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가 적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비단 기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실제 뇌사 판정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의거해 엄격한 절차를 밟는다. 뇌간반사가 완전히 소실되고 자발호흡이 유지되지 않는 등 완전한 뇌사상태라는 판정을 받아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같은 내용의 2차 조사를 거쳐야 한다. 신경외과 전문의, 변호사 등 4~6인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단 한명이 반대 의사를 표해도 뇌사 판정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뇌사 판정을 받아도 가족들의 합의가 없으면 뇌사자가 생전 기증 의지를 표했다 하더라도 기증은 불가능하다.

24일 ‘사후 각막 기증’과 ‘뇌사시 모든 장기(각막,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등) 기증’ 서약을 마친 기자는 ‘Save9’ 카드를 받았다. ‘Save9’은 9개의 장기로 9명의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같은 절차를 거쳐 타인에게 새 생명을 안겨준 뇌사자는 한 해 약 400명.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생전 장기기증에 서약한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 실장은 “2013년 기준 기증자 400여명 가운데 생전 서약을 했던 분들은 1% 남짓한 5명 뿐이었다”면서 “대부분은 가족들이 힘든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 대비 장기기증 희망자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장기기증 희망자는 143만6116명. 전체 인구의 약 2%에 불과했다. 올해 15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지만, 15년여에 걸친 누적 인원임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적은 숫자다. 영국은 전체 인구의 31%, 미국은 48%가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더욱이 연간 장기기증 희망자는 약 10만명.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며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전해졌던 지난 2009년 20만명을 기록한 이래 기증 희망자 수는 연간 10만명에서 쭉 답보 상태다.

김 실장은 장기기증 서약이 저조한 이유가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 및 두려움과 더불어 제도적 아쉬움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실장은 “미국은 운전 면허 응시 원서에 장기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칸이 있고 영국은 기증을 희망하든 희망하지 않든 체크 자체를 하지 않으면 면허 발급이 제한된다”면서 “국내에 해마다 120만명이 운전면허를 발급받고 있는데 이 중 10%만이라도 서약을 하면 한해 등록자 10만명이 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장기기증 교육과정을 넣어 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언하며, “제도가 개선되면 인식은 자연스레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은 길었지만 서약서 작성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후 각막 기증’과 ‘뇌사시 모든 장기(각막,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등) 기증’을 체크한 뒤 ‘Save9’이 적힌 장기기증등록증을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장기가 적출되는 일은 없었다. 막연했던 불안함은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던 셈이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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