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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험! 현장] “고사리손 천원은 따뜻했습니다”
“추운 날씨, 각박한 삶이지만 나눔의 온정만은 식지 않았습니다”…구세군 자선모금 체험해보니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성탄절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대로의 한 유명 신발가게 앞. 중앙차로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두꺼운 코트에 목을 파묻은 채 손에 들린 스마트폰만 응시하고 있다. 새로 개업한 옷가게는 수많은 알바생들이 행인들에게 판촉물을 나눠주느라 분주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기부했다. 지난 23일 본지 기자는 서울 강남대로에서 구세군 자선모금 행사에 봉사활동자로 참가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구세군 자선모금 체험을 하기 위해 방문한 기자에게 장규영 구세군 사관은 “주변이 이렇게 시끌벅적하면 모금액도 떨어지기 마련인데 큰일”이라며 “23~24일은 기부행렬이 가장 많이 이어지는 시기인데 올해는 분위기가 영 좋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모금 활동에 들어가기 전 간단하게 교육도 받았다. 종은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맑은 소리가 나도록 치고, 환한 미소는 필수라는 게 장 사관의 설명이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기부했다. 지난 23일 본지 기자는 서울 강남대로에서 구세군 자선모금 행사에 봉사활동자로 참가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기자가 종을 흔들며 체험을 시작한 뒤 이날의 최고액 기부자와의 만남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체험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 됐을 무렵 한 중년의 여성분이 선뜻 5만원짜리 두장을 고이 접어 자선냄비에 넣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반가운 마음에 따라가 말을 건네자 그 분은 “매주 1회씩 복지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최근엔 팔이 아파 쉬고 있다”며 “봉사를 못한 대신 기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내 사라져 버렸다.

너무 일찍 찾아온 행운 때문인지 이후에는 기부자의 발길이 뜸했다. 한 시간동안 딱 3명의 기부자가 준 5000원 미만의 기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올 연말의 전반적인 특징이란게 장 사관의 설명이다. 장 사관은 “일반적으로 추위와 눈이 겹칠 때 모금액이 증가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며 “길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연말연시 분위기 만큼 얼어붙은 경제 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던길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와 자선냄비에 1000원짜리 3장을 넣은 미국인 프랜신 임리(52ㆍ여)는 진심어린 쓴소리도 해줬다. 매일 구세군 자선냄비가 보일 때마다 기부에 나선다는 그는 “한국사람들은 평상시엔 참 정도 많은데 기부는 왜 인색한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딛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참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기부했다. 지난 23일 본지 기자는 서울 강남대로에서 구세군 자선모금 행사에 봉사활동자로 참가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부진한 모금 실적에 걱정이 되던 오후 6시께. 해가 지고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한 이때부터 그동안의 우려를 씻어줄 만큼 많은 시민들이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아 기부에 동참해줬다.

이름 모를 중년의 신사 한 분은 지갑에서 5만원권 한 장을 꺼내 자선냄비에 넣고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건넬 틈 없이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류소로 뛰어갔다. 이어 학원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 퇴근길 직장인들, 거리의 커플들은 동전부터 1000원권, 1만원권 가릴 것 없이 기부에 동참하고는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비록 작은 돈이었지만 어린이들도 고사리손에 들린 돈을 망설임없이 기부함에 넣었다. 일본에서 사촌을 만나러 왔다는 하나(12ㆍ여) 양은 “일본에서도 구세군이 보일 때마다 기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만나니 반가워 자연스럽게 기부했다”고 말했고, 임우재(10) 군은 자선냄비에 1000원을 넣은 뒤 “종을 한번 치게 해주세요”라는 엉뚱한 요청에 주변 사람들이 미소를 짓기도 했다.

체험이 끝날 때 쯤인 오후 8시가 되자 남성 한 분이 현금 대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디지털 자선냄비’를 활용해 카드로 기부하기 위해서다. 공무원 민동섭(38) 씨는 “매년 디지털 자선냄비를 활용해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며 “디지털 자선냄비가 설치되지 않은 일반 자선냄비에도 이 시스템이 설치돼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7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연말까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다. 장규영 구세군 사관은 “최근에는 성탄절을 커플사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며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눔의 의미를 키워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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