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나이차 많으면 유죄, 적으면 무죄?… “로미오와 줄리엣법을 아시나요”
-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vs. 성적 자기결정권 둘러싼 복잡한 함수관계
- 13세 이상 19세 미만 청소년은 의제강간죄 적용 안돼 ‘사각지대’
- 美 텍사스 주 등 남녀 나이차 3~4세 정도 불과한 경우 처벌 안해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 자신보다 스물일곱살이나 어린 여중생(당시 15세)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킨 혐의로 기소된 40대 연계기획사 대표 A씨가 4번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피해여성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 반면 두 사람의 문자 등을 통해 연인관계였다는 정황을 인정했다.

만일 A씨가 서울 법원이 아닌 미국 텍사스 주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법조계와 미국 한인회에 따르면 두 사람의 사전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A씨에게 벌금형과 함께 3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고 보고 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년作) 중 한장면


한국과 미국 재판부가 이처럼 다른 결론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과 의제강간(사랑ㆍ합의 여부 관계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것)의 적용 기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한국은 13세 미만까지만 의제강간죄가 적용된다. 13세 이상 19세 미만 청소년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관대한 성적 자기결정권 기준을 악용하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성범죄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이 증가한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발표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 판례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판결이 확정된 아동청소년대상 성폭력 사건 1308건 중 피해자 연령이 13세이상 16세미만인 사건은 40.6%에 이르는 531건에 달한다.

천정아 변호사는 “휴대전화 앱 등 통신기기를 이용한 성범죄 사건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06건(49.8%)의 피해자가 13~16세의 청소년이었다”며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의 기준연령을 높여 16세미만 청소년들도 성폭력 위험으로부터 법률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보다 성에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주요 선진국들은 15~17세를 의제강간 적용 기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청소년들의 신체적 성숙이 빨라지고 형사 미성년 기준 등 다른 법률에서 보호하는 연령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제강간죄 기준 상향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양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법(Romeo and Juliet law) 같은 절충적인 법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법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착안해 작명한 법안이다. 텍사스 등 미국 일부 주(州)에서 시행되는 이 법은 네 살 이상 차이가 나는 12∼16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할 경우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자에게 30년 이상의 유ㆍ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신 나이차가 3~4세 정도의 미성년 남녀가 성관계를 할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나이차가 클 경우 가중처벌을 하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한 셈이다.

bigroo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