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죽는 것도 ‘돈’이 되는 일본…죽음엑스포ㆍ죽음 전문가ㆍ죽음 플래닝까지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 이달 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딩산업전(ENDEX)’이라는 이름의 박람회에서는 다소 색다르면서도 서늘한 풍경이 펼쳐졌다. 비석이나 사람의 유골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풍선 등 장례용품이 전시된 한 켠에, 수의사가 죽은 사람의 옷을 갈아 입히는 경연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220개 회사가 참여한 이 박람회에는 2만2000여명의 사람이 방문해 성황을 이뤘다.

#. 도쿄 동부에 위치한 한 카페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관을 둘러싸고 모여 들었다. 사람들은 ‘죽음 전문가’에게 설명을 듣고 차례로 관에 들어가 눕는 체험을 해봤다. 카페 주인은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해주고, 뭐가 진정 소중한 지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죽음이라는 유령이.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대 등 거시적 사회 변화에 1만50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이 유령을 표면으로 소환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이른바 슈카츠(終活)가 세대를 막론하고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 민간 연구 기관인 NLI 리서치의 연구관 아키오 도테우치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가족의 돌봄을 받으며 임종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고령자, 중년, 젊은이 할 것 없이 혼자 사는 문제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염려한다”며 “2011년 지진과 쓰나미가 그 점을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콘텐츠는 그러한 사회상을 예민하게 포착해 냈다. 2008년 개봉해 수백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굿바이(일본 제목 디파쳐)’는 납관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았고, 201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는 위암 선고를 받은 샐러리맨의 생애 마지막 ‘버킷리스트’ 실천 과정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기업들 역시 커져만 가는 죽음의 기운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달려들고 있다. 2040년에 이르면 한해 사망하는 사람이 167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잠재적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슈카츠 산업은 2011년 1.83조엔(17조6800억원)에서 7% 성장해 올해는 2조엔(19조32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가령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은 몇 년 전부터 매장에 관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장례 패키지를 판매하는 등 슈카츠 산업을 벌이고 있다. 이온의 ‘죽음 플래닝’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은 8만명에 이른다. 이온 관계자는 “5년 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죽음이나 장례 같은 말만 들어도 도망가버렸는데, 이제는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긍정적이 됐다”고 말했다.

문구 기업 코쿠요는 죽음 준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엔딩 노트’라는 제품을 만들어 50만개 가까이 팔았고,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늘어만 가는 사후 신탁 가입자들에게 엔딩 노트를 나눠줘 유산 상속 등 사후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1년 무렵부터는 무연고 세입자가 사망할 경우 집주인에게 사후 처리 비용을 대주는 ‘고독사 보험’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인터넷판 엔딩 노트 사업인 ‘야후 엔딩’을 실시하고 있는 야후 재팬의 신스케 타카하시는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과 현실은 연결될 필요가 있다“며 ”슈카츠 붐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