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우리 사회에서 ‘부부폭력’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법당국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거나, 주변에서 법적인 조력을 받는 경우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부폭력이 ‘명백한 범죄’라는 우리 사회 인식 역시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법원으로부터 상담 위탁을 받은 가정폭력행위자 93명을 심층 분석한 결과, 가정폭력 가해자는 남성이 77명(82.4%), 여성이 16명(17.2%)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가운데서는 부부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경우가 65명(69.9%)으로 가장 많았고, 상호 폭력의 경우 11명(11.9%)로 2004년(2.9%) 조사 때보다 높아졌다.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 사이에서 폭력이 일어난 경우가 32.2%로 가장 많았다. 폭력 행사 원인으로는 ‘성격차이’(34.7%)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음주’(19.2%), ‘부부간 불신’(18%)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부부폭력 피해자들의 신고는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3년 단위로 시행하는 ‘전국단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율은 2010년과 2013년에 각각 8.3%과 1.8%에 머물렀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도 2010년 47건에 불과했던 가정폭력 피해자 신고 건수는 2013년(198건)까지 증가세를 보였지만 불과 1년 만에 다시 99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 중 약 80%가 20~60대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 곳곳에 부부폭력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홍태경 가야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지난해 부부폭력 피해여성 222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한 결과 피해자가 타박상ㆍ골절 등의 외적인 피해를 입거나 가해자가 흉기를 사용하는 등 폭력의 심각성이 더해질수록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바꿔 말하면 다수의 피해자들은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심각한 외상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로 인해 반복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부부폭력은 가정 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거나 제3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 등이 우리 사회에 폭넓게 공유돼 온 것이 적극적인 신고나 상담을 가로막는 원인”이라며 “부부간 발생하는 경미한 폭력 또한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전 사회적인 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증가하는 부부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근에는 ‘긴급임시조치권’, ‘가정폭력 삼진아웃제’ 규정이 신설되는 등 경찰의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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