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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담아미의 문화쌀롱] ‘천변살롱’의 두 마담을 아시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장안에 소문난 살롱이 있소. 모던걸들과 모던뽀이들은 다 안다는 ‘천변살롱’이오. 마담아미가 살롱의 두 마담을 만났다오.

때는 1937년, 모던의 도시 경성. 모던걸을 자처하는 두 ‘모단’이 있었으니, 바로 황석정 모단과 호란 모단이오. 아코디언, 바이올린, 기타, 베이스를 반주로 1시간 반 동안 오롯이 불러 제끼는데, 그 찰진 음성으로 때론 명랑하게 때론 구슬프게 객석을 들어다 놨다 하더이다.

혹 만요(漫謠)라는 걸 아시오. ‘오빠는 풍각쟁이야’ 정도를 알고 있다면 맞소. 참으로 구성진 멜로디에 해학 넘치는 노랫말이오. 그 시절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 2015년 지금에도 무척이나 모오오던한 그 노래들이 적적한 겨울밤을 달래기에 충분할 것이오. 

모단 역을 맡은 배우 황석정.


<천변살롱>

*공연기간 : 2015년 12월 10일~27일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러닝타임 : 총 90분

*관람일시 :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오후 3시/저녁 8시

*캐스팅 : 황석정/호란(모단) 하림(아코디언, 피아노), 조윤정(바이올린), 고의석(기타), 이동준(베이스)

*기획/제작 : 문화기획 함박우슴, 뮤직웰

모단역을 맡은 가수 호란(오른쪽)과 하림.


▶응답하라 1937, 모던의 도시 경성이여=천변살롱은 2008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음악극이다. 만요를 중심으로 트로트, 신민요까지 15곡의 노래와 함께, 노랫말에 맞는 상황들을 끼워넣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설정은 이렇다. 난생 처음 유랑극단 공연을 보고 음악에 빠진 추월이는 유랑극단을 따라 나섰으나 얼마 후 극단이 해체되고 오갈 데가 없어지자 진고개에서 이름 난 기생 명월이 밑으로 들어간다.

천변을 거닐다 재즈에 이끌려 춤에 빠진 추월이는 명월관을 나와 모더니스트들의 아지트 천변살롱에 취직을 하게 된다. 마담이 떠난 후 천변살롱을 맡게 된 추월이는 각혈하는 시인 진일파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가 지어 준 ‘모단’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

천변살롱은 일제강점기 신낭만주의부터 다다이즘까지 문화의 용광로가 됐던 1930년대 식민도시 경성의 이야기를 무대에 펼쳐 보인다. 일제시대 대중가요이면서 신파적인 트로트와는 달리 일상의 소소한 내용을 코믹한 가사로 담은 만요를 통해 시대 풍경을 그려 낸다.

서사는 노래 사이사이에 짧은 촌극이 벌어지는 형식을 취했다.

‘해수욕장 풍경(작사 조명암, 작곡 박시춘)’에 앞서서는 라디오 경성 뉴스에서 수영복을 입는 세태를 풍자하는 뉴스가 흘러 나오고, ‘모던 기생점고(작사 박영호, 작곡 김송규)’ 앞에서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조선 특산품으로 기생을 출품하려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플래퍼룩 스타일로 차려입은 모단이 재즈 리듬에 맞춰 찰스톤 춤을 추고 나서는 당시 경성의 모던걸, 모던뽀이들이 조선총독부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고 청원했던 사실을 신문기사를 통해 보여준다.

뭐니뭐니 해도 음악극 천변살롱의 주인공은 만요다. 만요의 멜로디와 노랫말에 따라 객석은 웃다 울기를 반복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 복고가 문화 키워드로 꼽히는 이 시기, 대학로 버전 ‘응답하라 1937’에 50~60대는 물론 30~40대도 박수와 환호로 응답한다.

“다 떨어진 중절모자 빵꾸난 당고바지 꽁초를 먹더래도 내 멋이야 이래뵈도 종로에서는 개고기주사 나 몰라 개고기 주사를” (‘개고기주사’, 작사 김다인ㆍ작곡 김송규)

“호주머니라도 털어서 보이리까 나는 무얼 어쨌다고 바가질 긁소 쓰바끼 히메보다 웃었기로니 그레타 갈보한테 녹았다니 원통하구료 아, 이런 도무지 코 틀어 막고 답답할 노릇이 또 어데 있담” (‘활동사진 강짜’, 작사 박영호ㆍ작곡 이용준)

▶종달새 같은 황 모단 vs. 공작새 같은 호 모단=올해 천변살롱은 배우 황석정과 가수 호란이 여주인공 모단 역을 맡았다. 1대 모단 박준면에 이은 새로운 모단이다.

특히 정통 연극배우로 잔뼈가 굵은 배우 황석정은 앞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잡지사 편집장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씬 스틸러’ 배우다.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피리를 전공하긴 했지만, 뮤지컬이나 음악극에서 노래를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찰스톤 춤을 추는 황석정은 한 마리 종달새를 연상케 한다. 짙은 살구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콧소리를 내는 그녀에게서 나이를 실감하기란 어렵다.

노래와 노래를 연결하는 촌극에서 애드리브도 노련하다. “좀 더 모스트스럽게”를 외치던 드라마 속 편집장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는 탁월한 연기실력으로 음악을 요리한다. 노래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코믹한 만요와 구슬픈 트로트까지 폭넓은 감정선을 보여준다. 황석정 버전의 모단을 가장 잘 말해주는 넘버는 ‘다방의 푸른 꿈(작사 조명암, 작곡 김해송)’이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부르누나”의 대목에서 그의 처절한 감정 연기에 압도된다.

가수 호란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음에도 안정된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다.

특히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들일때나, 직접 객석으로 다가가는 애드리브가 능수능란하다. 공작새처럼 화려한 이미지의 호란은 옷을 바꿔 입는 것만으로도 객석의 박수를 부른다. 올리브 그린 벨벳 드레스를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와” 하는 감탄사가 연발된다.

호란의 개성을 보여주는 넘버는 ‘신접살이 풍경(작사 고마부, 작곡 유일)’이다. 섹시하면서도 세련된 음색이 특징인 호란이 천진난만한 새색시로 깜쪽같이 변신한다.

1시간 반 동안 대사와 노래를 풀어가는 건 모단이지만, 무대 한 켠에 자리잡은 살롱밴드이면서 살롱의 ‘죽돌이’ 손님 역할을 맡은 하림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하림은 천변살롱의 음악감독이면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멤버다.

그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솔로곡 ‘개고기 주사’와 듀엣곡 ‘활동사진 강짜’, ‘왕서방연서’를 소화한다. 버스터 키튼 모자와 해롤드 안경을 쓴 하림은 영락없는 1930년대 모던뽀이를 재현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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