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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바우만 ”우리 시대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 모습“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다.”

‘생존하는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도덕적 불감증’(책읽는수요일)에서 한 말이다. 현대 사회의 일상속에 내재된 악의 모습을 바로 자발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이케아의 조립품들과 페이스북에 빗댄 것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일단 들어가면 강제된 매커니즘 속에서 운명의 볼모가 돼 빠져나올 수 없는 소비사회와 SNS 디지털 감옥을 ‘DIY복종’이라고 그는 말한다. 

 
도덕적 불감증/ 지그문트 바우만ㆍ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책읽는수요일
바우만은 ‘탈근대 석학’으로 불릴 정도로 탈근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특히 2000년대 특징을 유동성으로 정의한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은 바우만의 핵심사상이다.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ㆍ제도ㆍ풍속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이른다.

이 책은 사회학의 두 거장 바우만과 레오니다스 돈스카스의 대담으로 우리 시대, 즉 유동성시대 악의 모습은 어떤 형태를 띠는지 일상생활과 정치, 대학의 현장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악은 비정상적이고 병리적, 탈선과 같은 것에 숨어 있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평범한 삶의 사소함과 진부함 속에 숨어있음을 저자들은 예리하게 파헤쳐 보여준다.

현대인들이 일회성의 재난에는 모두 분노하면서 왜 불평등 구조에는 모두 무감각한지, 불안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징후들,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태도를 닮아가는 인간관계, 기술적 인간의 운명 등 현대사회의 병적 징후들을 깊이있게 들여다보았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오늘날의 악의 모습은 가령 이런 식이다.

타자를 일부러 잊는 것,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그를 보지도 않는 것, 우리 곁에서 살아 있고 실재하며 무언가 옳은 것을 하거나 말하는 사람을 물리침으로써 우리와 다른 종류의 인간을 인지하고 인정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일상 가까이에서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거나 다른 기호론적 세계에 살고 있는 페이스북 ‘친구들’을 만나고 만들어내려 애쓰는 행동은 바로 우리의 악이다.

또 홍수나 재난 등 일회성 공포, 일회성의 잔인한 행동은 우리를 자극해 떼 지어 거리에 나서게 하지만 소득과 삶의 기회의 불평등으로소외된 자, 집없는 이, 강등당한 자들이 꾸준히 수치와 냉대를 당하는 데는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바우만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은 탈도덕화와 감수성의 상실을 동일시하는 데 있다. 바우만은 ‘감수성의 상실’을 ‘아디아포론’이란 말로 대신한다. 그리스어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반응하지 않거나 마치 사물이나 비인간에게서 일어나는 것처럼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페이스북이나 여타 SNS공간에 올라오는 수많은 텍스트들은 그저 구경거리이며, 단지 소비대상일 뿐이다. 수많은 자극적인 얘기들이 양산되면서 우리의 감각은 무뎌지고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에 반응하는 몸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바우만은 이런 대중사회와 대중문화는 불가피하게 우리를 탈도덕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욕망을 만족시키는 대상의 능력이 점점 더 빨리 소모됨에따라 거절과 처분이 더 빨라지는 소비주의적 태도 역시 탈도덕적 환경을 부추긴다. 저자들은 소비주의 문화는 모든 상점과 서비스 기관을 진정제와 마취제를 공급하는 약국으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일갈한다. 도덕적 태만의 범위와 강도가 커짐에 따라 진통제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중독적이 돼가고 그 결과, 도덕적 불감증은 마치 본성처럼 자리잡는다.

“시청률 전쟁과 흥행 수익이 삶의 리듬을 좌우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첨단 장치와 온갖 잡담, 험담에 빠져 있는 곳에서,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는 ’황급한 삶‘속에서 타인의 곤경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은 말라가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선정적이고 무가치한 정보들로 가득 찬 이런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오직 유명인사와 미디어 스타들 뿐이다. 이는 우리가 성찰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동의한 결과라고 저자들은 질타한다.

그렇다면 유동적 세계에서 감수성의 상실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저자들의 대안은 역사적 성찰이다. 역사를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물을 수 있는 권리를 정치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어떤 정치적 신조나 그것에 봉사하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는 우리 존재의 상징적 설계이자 우리가 매일 행하는 도덕적 선택이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디스토피아로 종착하지 않는다. 사랑, 우정, 충성 그리고 그것들의 정직하고 충실한 산파인 창조 정신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격류속에서 삶을 바꿔놓고 있는 흐름들을 성찰할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책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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