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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24> 오만]‘오만은 어떤 나라…인도양 호령 해상제국...신밧드 모험의 출발지
오만은 중동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역사적 기록은 서기 630년부터 존재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약 5000년 전에도 인류가 거주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인도양에 접한 위치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해상교역을 중심지였다. 8세기 경 해상무역상 ‘아부 우바으다 압 알라 빈 알 카심 알 우마니’는 중국과의 해상교역로를 개척했다. 이 때를 모티브로 탄생한 것이 ‘신밧드의 모험’이다.

신밧드 모험의 출발지이자 오만의 해상무역 중심지인 소하르 항구를 통해 무역상들은 구리와 유황 등을 수출하며 해상력을 키웠다.

오만은 남아라비아에서 이주한 카흐탄 부족와 북부에서 이주한 니자르 부족으로 구성됐다. 이슬람 최초 종파로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이바디(ibadi)’를 받아들여 종교지도자를 선출하는 이맘 체제(Imamate)를 수립했다.

해상세력으로 오만의 국력은 상당했다. 16세기 희망봉 항로를 발견한 포루투갈인들이 약 150여년 동안 오만의 해안지역을 점령(1507~1650)했지만, 17세기 말 이맘 야루비가 지휘한 해군에 의해 결국 축출됐다.

18세기에도 이맘 술탄 빈 사이프 2세 사후 후계 갈등으로 내부분열이 발생, 1737년 페르시아가 잠시 오만의 해안을 점령했다. 하지만 1744년 이맘에 선출된 아흐메드 빈 알 부사이드가 페르시아인들을 축출했다. 이때 처음으로 ‘알 부 사이드’ 가문의 세습체제가 구축돼 오늘에 이른다.

아흐메드는 페르시아 군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해군’을 창설했다. 오랫동안 해상무역을 전개해온 오만은 무엇보다 항해에 능했다. 아흐메드는 해군을 육성해 이 지역에서 영국 다음 가는 해군력을 갖춘다. 인도양을 항해하는 배들도 오만 해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이맘 대신 술탄 칭호만 쓰기 시작한 하마드 빈 자이드 때는 수도를 내륙도시 루스타크에서 대규모 항구가 있는 무스카트로 이전했다.

이후 술탄 빈 아흐메드, 자이드 빈 술탄을 거치며 오만의 최전성기가 펼쳐진다. 영국과 손잡고 인도양을 제패했고,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도 쌓았다. 나폴레옹의 중동진출을 저지한 것도 당시 오만 해군이었다. 영토도 아프리카 동부와 인도 서부까지 확장됐다. 1833년에는 중동에서 최초로 미국 본토에 사절을 파견, 경제협력을 맺었다.

하지만 자이드 빈 술탄이 1856년 사망한 이후 내전이 벌어지면서 아프리카 동부 잔지바르가 독립하고, 20세기 들어 인도 서부 지역 땅은 파키스탄에 매각하면서 오늘의 국경이 확정됐다. 잔지바르는 1964년 공산혁명으로 탄자니아가 들어섰다.

지금의 오만은 자이드 술탄의 장남 투와이니가 계승했지만 국력이 약화돼 영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한다. 노예 무역 및 무기매매 등의 상업도 쇠퇴한다.

특히 내분이 치명적이었다.

1913년 술탄 파이잘 빈 투르키 사후 내륙지방(니즈와 일대)은 새로운 이맘을 선출해 1920년까지 무스카트에 반발한다. 시브(Seeb) 협정을 통해 해안지방은 알 사이드 가문이, 내륙지방은 니즈와 부족의 이맘이 행정권을 갖게 됐다.

1932년 현 국왕의 부친인 사이드 빈 타이무르는 독재와 쇄국주의로 유명하다. 세계대공황과 잇딴 반란을 경험해야 했던 사이드는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왕으로서의 의사결정권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석유가 발견되면서 내륙지방의 이맘과 무력충돌하지만 무스카트 측이 승리하면서 오만은 다시 통일된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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