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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동양인 최초 돌체앤가바나 디자이너 ‘조지 박’, 그가 처음 ‘입’을 열었다

-국내 언론 처음으로 헤럴드경제와 이메일 인터뷰
-“홍대 술집서 본 흑백사진 한장이 내 인생을 바꿨다”
-대학도 포기했었지만 운명처럼 다가운 흑백 사진들
-베르사체 헤드 디자이너 올랐지만 꿈은 아직 진행형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모두가 꿈이 있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좇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었다.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가능성만으로도 언제든 타오를 20대, 패션디자이너라는 꿈을 위해 몸을 던졌던 그에게는 현재 동양인 최초 돌체앤가바나 디자이너라는 수식이 따라다닌다.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모스키노(Moschino)를 거쳐 현재 베르사체의 남성복 컬렉션 헤드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조지 박(George Parkㆍ41)의 이야기다.

1994년 홍대 어느 술집에서 돌체앤가바나의 흑백화보를 본 그는 처음으로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꿨다. D&G의 첫 동양인 디자이너이자, 남성복 컬렉션 헤드디자이너가 된 조지 박의 흑백 프로필 사진들. 유난히 흑백 사진을 좋아하는 박 씨의 모습은 어느샌가 ‘묵직한 충격’을 준 돌체앤가바나 화보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는 인터뷰 사진을 요청하자, 자신의 흑백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제공=조지 박]

남성복 컬렉션 디자인의 수장을 맡고 있는 그에게서 베르사체의 시즌별 테마들이 태어난다. 그는 그의 일이 ‘퍼즐과 같다’고 표현했다. “시즌별 테마와 컬러 무드 보드(디자인 진행을 위한 사진들)를 만들어 도나텔라 베르사체한테 보여주고, 저와 같이 일하는 팀을 관리하는 것이 하는 일이에요. 아주 쉽게 말하면 퍼즐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각각이 다른 조각들을 맞는 자리에 맞춰 그림을 완성하면 되는거죠.”

1994년, 보그, 그리고 돌체앤가바나 =터닝포인트라는 말이 있다. 일생을 사는 동안 누구에게나 세 번의 큰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느냐, 혹은 그냥 흘려보내느냐에 따라서 ‘평범한 삶’과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나뉜다.

헤럴드경제와 국내 언론 최초로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그의 터닝포인트로 1994년 홍대 어느 가게에서 ‘돌체앤가바나’ 광고 사진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꼽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멋진 디자인 오피스를 차리고 싶은 막연한 꿈만 있었어요. 딱히 대학을 다니고 싶지 않아서 대학도 가지 않았죠. 그러던 중 홍대 술집에서 패션하는 친구의 잡지인 ‘보그 이태리’를 처음으로 구경했어요. 돌체앤가바나 흑백광고를 본 것은 그때였어요.”

패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박 씨에게 흑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 돌체앤가바나의 화보는 ‘머리에 묵직한 충격’을 가했다. 유명한 모델과 유명의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도 사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DOLCE & GABBANA’란 로고는 그의 가슴에 그대로 각인됐다. 그는 생각했다. “이 멋진 사진을 찍은 돌체앤가바나에서 일을 하고 싶다. 패션 디자인을 해야겠구나”라고.

목표가 생겼고, 빠르게 행동에 옮겼다. 이듬해인 1995년, 그는 대학에 들어가 의상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밀라노행 비행기를 탔다. 남성복을 제대로 전공하고 싶었고, 2년의 시간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달렸다. 박 씨는 최고의 점수로 2년제 학교(Istituto)를 졸업했다.

23세. 젊은 나이었다. 무서울 것이 없었고, 다행히 그가 내딛는 길의 목표는 명확했다. “제가 패션을 하게 된 이유는 돌체앤가바나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냥 디자인 몇 장을 들고 돌체앤가바나 리셉션에 두면서 ‘제발 부탁이니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호소했어요.” 

[사진제공=조지 박]

▶“넌 정말 돌체앤가바나 스타일이군”=처음 밀라노의 땅을 밟았던 1997년, 할인을 받아 돌체앤가바나의 티셔츠 하나를 샀다. 명품 티셔츠를 갖는 것보다 티셔츠가 담긴 돌체앤가바나 쇼핑백을 더 좋아했던 그다. 그는 당시의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 여전히 그 쇼핑백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돌체앤가바나의 디자이너’. 목표는 분명했다. 어쩌면 무모해보이지만, 행운의 여신은 무작정 돌체앤가바나의 문을 두드린 그의 손을 잡았다. 일주일 후 그는 면접의 기회를 얻었고, 후에 인턴디자이너로 입사를 했다. 박 씨는 아직도 당시 디자인 이사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넌 정말 돌체앤가바나 스타일이군!”. 2000년, 그렇게 박 씨는 동양인으로는 첫 돌체앤가바나 디자이너가 됐다.

“디자인실엔 몇몇 유럽사람들 빼곤 전부 이탈리아 사람이었어요. 이탈리아어도 많이 부족했죠. 모두들 절 무슨 원숭이처럼 보는 것 같았어요.”

첫 몇달은 쉽지 않았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히 일본인일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 밀라노의 패션계는 동양인들이 많다. 그는 “좋은 디자인실은 다국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동양인 디자이너)대다수가 한국사람이에요. 유럽에 비해 빈곤한 패션 문화에서 태어난 우리가 전세계 디자인실에서 일하고 있으니 한국 디자인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돌체앤가바나에서 일하던 2003년, 위트있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모스키노에 스카웃 됐다. 모스키노에서 독특한 콘셉트에 유머러스함을 곁들이며 자신있는 젊은 남성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헤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베르사체로 둥지를 옮긴 것은 2006년이다. 헤드헌팅 업체에서 ‘베르사체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 그의 대답은 ‘노’였다.

“(베르사체는)제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어서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한 번 바꿔봤습니다.” 

[사진제공=조지 박]

다른 길을 걷는 디자인, 나와 다른 시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자신의 스타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르사체에서 그는 9년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의 남성복 컬렉션 헤드 디자이너가 됐다.

돌체앤가바나, 모스키노, 베르사체…. 내로라 하는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실에 몸 담았던 그다. 박 씨에게 그가 느꼈던 각 브랜드의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집마다 취향과 스타일이 있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유럽에서는 옛날 의상실의 개념으로 패션 회사를 집이라고 부른다.

“돌체앤가바나는 강한 이탈리아 감성, 그것도 시칠리아섬의 영혼이 있어요. 남성복에 아주 강해요. 모스키노는 가장 독창적인 90년대 이탈리아 디자이너였어요. 유행같은 것은 모르는 위트와 유머러스러움의 천재 디자이너였구요, 베르사체는 왠만한 사람들이 소화하기 힘든 브랜드죠. 레드카펫에 어울리는 화려함을 즐기는 부유층이나 할리우드 스타, 록스타들이 좋아하는 디자이너에요.” 

컬렉션을 위해 조지 박이 그린 스케치. [사진제공=조지 박]

디자인은 좋은 향을 가진 향수=명품은 화려하다. 대중에겐 명품 디자이너의 삶도 명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명품 디자이너의 생활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회사의 이름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아닌, ‘베르사체’의 디자이너인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박 씨는 본인을 그저 ‘남성복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이탈리아 밖에서는 베르사체 디자이너라면 어디서든지 주위의 관심을 사죠. 그럼 저는 그냥 남성복 디자이너라고 저를 소개해요. 명품 디자이너라고 특별하지는 않아요.”

패션디자인을 위해 인생의 3분의1 이상을 살아왔다. 그는 패션 디자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저에게 패션은 어떻게 보면 거품이고, 좋은 향의 향수이며, 흐르게하는 노래 가사 같은 것입니다. 제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좋아요. 저에게 패션디자인은 너무 재미있는 일이랍니다.”

박 씨의 꿈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살아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어요. 15년 동안 한 도시에 머물러 디자인실에 있던 디자이너였죠. 이젠 살아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배울 것이 아직도 많다는 그다. 할 수 있다면 패션 디자인과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동서양을 돌아다니며 같이 하고 싶다고.

꿈을 꾸는 자들은 많다. 반면 꿈을 이루는 자는 소수다. 디자인 공부에 매진했던 그와 같은 노력도, 포트폴리오를 들고 회사로 무작정 찾아가는 과감한 도전정신도, 꿈의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는 운도 꿈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소년, 청년들에게 도전은 쉽지않은 과제다. 취업문은 더욱 높아지고 있고, 꿈보다는 현실을 쫓는 것이 당연해졌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의 답은 ‘인내력’으로 정리된다.

“여러 나라의 젊은 친구들 많이 만나 봤어요. ‘넌 꿈이 뭐니? 20년 후에 네 모습이 어떻게 상상되니?’라고 물으면 절반은 목표는 커녕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냥 돈 많이 벌고 싶다고들 해요. 하기 싫은 거 하며 돈 많이 버는 것보단 덜 벌더라도 좋아하는거 하며 사는게 낫지 않을까요?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이루려 노력해보세요. 인내력이 필요하고 자신을 믿어보세요.”

■조지 박(George Park)은 누구?

▷1974년 출생

▷2000~2003년 돌체앤가바나(D&G) 디자이너

▷2003~2006년 모스키노(Moschino) 디자이너

▷2006년~현재 베르사체 남성복 컬렉션 헤드 디자이너(Versace designer presso Gianni Versace)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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