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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0년 전 옛사람이 묻는 ‘복수’와 ‘의리’…연극 ‘조씨고아’
“약속을 했다네. 어떻게든 조씨고아를 살리겠다고 말했다네”(정영)

“그깟 약속이 뭐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그깟 뱉은 말이 뭐라고”(정영의 아내)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이겠다는 정영의 말에 아내는 절규한다. 결국 조씨고아는 자신의 일가친척 300명과 정영의 아들을 죽인 도안고에게 복수한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정영의 얼굴에는 통쾌함 대신 공허함이 가득하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는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 사건을 원나라 때 작가 기군상이 재구성했다. 700여년 전에 쓰여진 작품을 국립극단과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명동예술극장 무대 위에 되살렸다.

연극 ‘홍도’, 뮤지컬 ‘아리랑’ 등 고전 각색 능력으로 정평이 난 고선웅 연출의 작품답게 2시간 30분이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하성광(정영역)의 연기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무대는 텅 비어있고 반원형으로 둘러쳐진 커튼이 전부다. 뽕나무, 곤장 등 소품들은 천장에 매달려있다가 필요할 때 무대 위로 내려온다. 텅 빈 무대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연극 보는 재미를 더욱 배가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식의 목숨을 내놓는 정영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번 뱉은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정영의 모습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도 거리낌없이 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고선웅 연출은 “요즘은 휴대폰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너무 쉽게 말을 뱉지만 과거에는 뱉은 말을 지키는 것이 고결한 가치였다”며 “요즘 아랍권의 테러나 보복범죄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복수’라는 이 작품의 묵중한 주제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동양의 햄릿’이라 불리는 ‘조씨고아’는 오는 22일까지 공연한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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