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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 <21> 바레인]‘바레인 왕실, 영국·미국 업고 절묘한‘호가호위 처세’
강대국의 힘에 기대 지역내에서 정치적 위상을 인정받는 것은 중동 작은 나라 왕실의 공통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바레인 왕실은 특히 ‘호가호위(狐假虎威) 처세’에 능하다. 민주요구를 묵살하고 전제정치를 강행하고 있으면서도, 민주주의의 탄생지와 모범국가인 영국, 미국의 절친인 점이 ‘아이러니’다.

오늘날 바레인왕국 탄생은 사실상 영국의 힘이다.


상인이던 알 칼리파 가문이 바레인 땅의 합법적인 통치자가 된 것은 1820년 영국과 ‘일반평화조약’을 맺으면서다. 1861년에는 ‘영구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아예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 덕분에 이집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주변의 ‘덩치국가’들은 바레인 땅을 넘보지 못한다.

영국으로서는 중동 지역에서 소국(小國)들의 입지를 지켜주면서 동시에 강대한 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이탈리아의 바레인 침공을 막아내며 독일 등 동맹국의 에너지 수급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오늘날 바레인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든 것도 영국이다. 1926년부터 1957년까지 무려 31년 간 바레인의 최고행정관(Chief Administrator)을 역임한 영국인 찰스 달림플 벨그레이브경은 민형사 사법체계를 만들고 경찰기능을 구성하고 이들을 훈련시켰으며 대중화된 교육을 도입하는데 힘썼다. 지방분권화, 석유탐사에도 공헌했다.

중동지역 여학교도 1928년에 처음으로 설립됐고 노예제도 폐지됐다. 전화도입, 신문발행, 영화관, 방송국이 들어온 때도 이때다.

영국의 힘 덕분에 소수의 수니파 왕실과 귀족들은 다수의 시아파 국민들을 별 탈 없이 통치할 수 있었다.

바레인 왕실은 대부분 영국에서 유학, 영국 왕실과도 친밀하다.

2005년 영국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할 때 중동의 군주들 가운데선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가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이다. 다른 중동국가들은 왕자나 공주들을 보냈다.

하마드 국왕은 2011년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결혼식에도, 초청받았지만 당시 ‘아랍의 봄’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부득이하게 불참했다.

2012년 5월엔 윈저성에서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비공식 오찬에도 참석할 것이란 소식이 있었으나 반정부 시위를 무력진압한 데 대한 반대시위로 방영이 좌절됐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도 영국 서리(Surrey)에 있는 애플가스컬리지에 진학했고 이후 캠브리지에 있는 리즈학교(Leys School)에 다녔다. 이후 햄프셔의 엘더숏에 있는 몬스사관학교에 다니면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68년 졸업을 했다. 사관학교 졸업 후에는 영국군 장교로도 복무한다. 하마드 국왕의 아들인 살마 빈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왕세자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일엔 마나마에 영국 해군기지를 새로 건설하기로 하고 칼리드 빈 하마드 바레인 외무장관과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이 그 첫 삽을 뜨기도 했다.

오랜 기간 영국에 기댄 바레인이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새로운 질서인 미국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마드 국왕은 영국에서 독립한 이듬해인 1972년 왕세자의 신분으로 미국 군사학교에서 수학한다. 살만 왕세자도 대학 학부는 워싱턴D.C. 아메리카 대학 출신이다.

미국과의 친분은 중동 내 최대 친미국가인 사우디와의 깊은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격화되자 사우디 군 1000여명이 바레인에 파견된다. 역시 친미국가인 쿠웨이트 역시 500여명의 경찰을 보내 바레인의 치안을 이뤘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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