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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 <21> 바레인]‘진주 캐던 상인들서...석유 부호의 나라로
알 칼리파 가문이 바레인 역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칼리파 가문은 아랍 종족 연맹체인 바니우트바(Bani Utbah)를 계승한 수니파 상인 가문의 하나였으며, 1766년 본거지인 쿠웨이트에서 알주바라(지금의 카타르) 지역으로 이주했다.

당시 카타르 지역은 황무지에 가까웠으나 진주가 많이 생산됐다. 1783년 칼리파 가문은 오만이 지배하고 있던 카타르 동쪽의 바레인 지역을 침공해 차지했다. 이때 침공군을 이끌던 이가 아흐메드 빈 무함마드로 그가 바로 카타르의 1대 하킴이다. 정복자 아흐메드란 의미로 아흐메드 알 파테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칼리파 가문이 무력으로 뭔가를 얻은 것은 이 때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아흐메드 이후 바레인은 외세의 침략을 막는데 급급했다. 이집트의 위협도 존재했고 오만과의 싸움에서 져 식민통치를 받기도 했다. 1803~1809년은 오만의 보호령이었고 1810년엔 직접통치를 받았다.

그러다 1820년 영국이 중동에 진출하며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식 근대국가 체제가 도입되기 전인 1920년대까지만 해도 바레인은 부족위원회가 정부기능을 하고 사회관련 문제는 종교법정에서 관할했다. 위원회는 진주생산, 팜농장, 어업 등 경제 전반에 관여했고 원하는 만큼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절대권력을 갖고 있었다. 1869년부터 1923년까지 무려 54년 간 바레인을 통치한 이사 빈 알리는 바레인의 최장기 군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1920년대부터 대대적인 행정개혁이 이뤄졌고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뒤를 이은 하마드 빈 이사(통치기간 1923~1942)는 영국인 찰스 벨그레이브를 고문으로 두고 사실상 영국이 통치하는 그림으로 개혁이 이뤄진다.

하지만 바레인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석유다. 바레인석유회사가 석유탐사를 시작해 1932년 처음으로 석유가 나왔다. 이후 바레인 경제는 어업과 진주생산에서 석유산업으로 중심을 옮기게 된다.

바레인은 시아파가 다수이고 통치세력인 수니파는 소수다. 의회 해산은 종파갈등으로 전이됐고 이후 바레인은 지금까지도 시아파의 끊임없는 반정부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아파 이란과의 관계도 국내 정세에 영향을 미쳤는데 1981년엔 이란에서 파생된 ‘바레인해방이슬람전선’이 바레인 지도세력을 암살하고 정권을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꾀하기도 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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