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6000여년 전 숨결이 느껴지다…인천 운서동ㆍ양양 지경리 신석기 유적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신석기 시대 취락지로 알려진 인천 운서동과 강원도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곡물 재배 흔적이 확인됐다. 약 6000여년 전의 생활상이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의 하나로 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학교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실시한 ‘인천 운서동Ⅰ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 출토 토기에 대한 압흔(壓痕, 눌린 흔적) 조사 결과, 우리나라 초기 농경의 발전 양상을 밝혀줄 조(粟), 기장(黍) 등의 곡물자료를 발견했다고 2일 밝혔다. 


인천 운서동Ⅰ유적은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4000~ 3600년)의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평가된다. 정형화된 농경구의 출현과 대규모 주거지의 모습으로 미뤄볼 때 중국의 화북, 요서 지방에서 이뤄진 조(粟) 중심의 초기 농경이 이곳에 도입됐고, 이 초기 농경이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발굴 조사에서 재배 종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결과, 신석기 시대 전기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Ⅰ유적에서 다량의 조, 기장 등 곡물 압흔 131점이 확인됐다. 이로써 인천 운서동Ⅰ유적은 곡물 압흔이 확인된 우리나라의 대규모 취락 유적지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유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신석기 시대 중기의 취락 유적인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도 조, 기장 등의 잡곡과 들깨 등 압흔 294점이 조사되었다. 이는 중부 서해안에서 시작된 초기 농경이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인천 운서동Ⅰ유적의 조사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중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방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아울러 양양 지경리 유적은 다른 유적과는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으며, 수렵ㆍ채집 뿐만 아니라 농경의 비중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확인된 조, 기장, 들깨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쌓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한 시점에 토기가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개체의 토기 점토 안에 다량의 작물(70여 점)을 혼입한 사례도 확인된다.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한국 신석기시대 고고식물 압흔분석보고서』로 발간해 국내외 국공립 도서관과 국외 연구기관 등 관련 기관에 배포하며,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전자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ssj@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