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답을 얻는게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연극”…연극 ‘맨 끝줄 소년’ 김동현 연출ㆍ손원정 드라마터그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즉각즉각 웃음이 터지게 하거나 가족,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눈물을 빼게 하는 연극은 많다. “작품의 의도는 이거다”라고 명쾌하게 알려주는 연출가도 많다. 하지만 다음달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맨 끝줄 소년’은 수학처럼 ‘1+1=2’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관객이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현실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불분명하다. 김동현 연출은 “수학처럼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극장을 걸어나가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맨 끝줄 소년’은 스페인 극작가 겸 연출가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열일곱살 소년 클라우디오는 친구인 라파의 집에서 관찰한 일들을 써서 작문과제로 제출한다. 처음에는 벌어지는 사실 그대로 적는다. 하지만 매력적인 글을 써보겠다는 소년의 욕망은 점점 위험한 상상으로 발전한다. “이 이야기는 진짜일까, 가짜일까”라는 질문과 대답은 관객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동현 연출(50)과 드라마터그(dramaturg)인 손원정(40)씨 부부는 작품과 관련 무엇이든 단정짓는 것을 경계했다. 드라마터그는 캐스팅, 연습 등 공연 전 과정에 걸쳐 작품 해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대표인 김동현(왼쪽) 연출은 경영학과 출신이다. 연극 보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결국 연출까지 하게 됐다. 영문학과 출신인 손원정씨는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나 결혼했다. 손씨의 동생인 원평씨는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질문에 대한 답을 정직하게 다 말할 수 없는 연극이예요. 하지만 그 물음표가 강력한 힘이죠. 많은 관객들이 일반적인 연극을 볼 때 갖는 즐거움을 선호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와 다른 큰 즐거움을 줍니다”(김동현)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묘하게 흔들면서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하는 연극이예요. 예술 전반에 대해 혹은 연극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손원정)

김 연출은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천국으로 가는 길’에 이어 네번째로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을 연출한다. 후안 마요르가는 수학과 철학을 동시에 전공했다. 후안 마요르가는 “연극은 철학처럼 갈등에서 출발하며, 철학자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질 수 있다. 위대한 연극, 가장 좋은 연극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에 이 희곡을 읽고 ‘재미있겠다’ 생각했는데 다음달부터 괴롭기 시작했어요. 배우들이 ‘모르겠다’고 하는데 ‘정말 모르겠다’가 아니라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고 수많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예요. 이해를 통해 선택해 나가야하죠. 후안 마요르가는 친한 사람인데 사람을 참 힘들게 만들어요”(김)

“후안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들은 ‘이런 식으로 되겠구나’ 대충 그림이 그려졌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그런 것이 없었죠”(손)

극중 문학교사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는 클라우디오의 글을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뭐가 끔찍한지”를 이해시키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클라우디오의 글 자체에는 끔찍한 것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한 집안을 엿보고 그것을 글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끔찍할 수도 있죠. 처음 희곡을 읽을 때는 선명한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도 배우들과 헤르만-클라우디오의 관계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손)

“제가 집에서 하는 얘기랑 밖에서 하는 얘기가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클라우디오는 남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쓰게 되요. 남이 보면 부끄럽고 위험한 얘기를 말이죠. 나중에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이었는지 드러나게 되요. 그렇다면 궁금해지죠. ‘클라우디오는 다시 쓸 수 있을까, 다시 쓴다면 뭘 쓸까’”(김)

연극 ‘맨 끝줄 소년’ 콘셉트 사진.[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 작품은 2013년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의 영화로 국내에 먼저 알려졌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에서는 라파의 집이나 학교 등이 등장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집과 같은 무대 세트가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 위는 수많은 공간으로 바뀌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 연출은 코러스 3명이 내는 소리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고조될 때 심리를 표현할 예정이다. 손씨는 번역한 대사가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도록 윤색했다.

하지만 관객에 따라 작품은 천차만별로 읽혀질 수 있다. 주입식 교육과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 작품이다.

“제가 연출한 ‘먼 데서 오는 여자’를 지난해 인천에서 공연할 때였어요. 첫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관객이 바나나를 꺼내드시고 집에 전화를 거시고 난리가 벌어졌죠. 둘째날에는 관객들이 너무너무 열심히 보면서 우는 거예요. 어떤 관객들은 분명 ‘이 작품은 이렇구나’라는 정답을 기대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도 많아요. 정답이 없는 강력한 질문을 듣게 됐을 때 우리는 오랫동안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좋은 연극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겠죠”(김)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맨 끝줄 소년’은 오는 11월 10일부터 12월 3일까지 공연한다.

ssj@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