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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자는 철저하고 괴팍했던 사람…사후 작품값 천정부지 오를 것”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 천경자 화백이 91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10년 동안 근황은 물론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었다. 199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소식이 끊겼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천 화백의 딸 이혜선(71)씨가 천 화백을 대신해 작품 저작권에 대한 모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두고 천 화백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거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올해 7월 K옥션에서 8억6000만원에 낙찰된 천경자 화백의 ‘막(幕)은 내리고(41×31.5㎝, 종이에 채색, 1989)’. [사진제공=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생사 여부가 미스터리에 싸여 있던 천 화백이 최소 두달 전 사망했다는 소식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생전에 천 화백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새삼 증폭되고 있다. 또 미술계에서는 사후 그의 작품 가격이 얼만큼 뛰게 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천경자는 철저하고 괴팍했던 사람…작품 한 점도 허투루 안 내놔”=천 화백의 아들을 잘 안다는 한 미술계 인사는 천 화백을 “한번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용서를 하지 않을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천 화백이 홍익대학교 교수시절 당시 제자였던 고 송수남 화백에게 졸업 가능한 점수(60)보다 1점이 낮은 59점을 줘 낙제를 하게 만들었다. 이후 송 화백이 천 화백을 옆에서 모시면서 잘못을 빌고 그래서 겨우 60점을 넘기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천 화백의 이러한 성정은 1991년 위작 논란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가 전한 당시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 나왔던 ‘미인도’ 작품을 가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천 화백은 생전에 신작이 나오고 전시가 열리면 장ㆍ차관 등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그림이나 화집을 종종 선물하기도 했는데, 미인도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줬던 작품이었던 것.

당시 국현에 나왔던 작품이 바로 1979년 10ㆍ26 사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나와 압류됐던 작품이었다. 그는 “그림 상납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을 우려한 천 화백이 스스로 나서서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을 것”이라며 “작가로서 수치스러운 일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표구사로 유명했던 동산방화랑도 천 화백의 그림을 직접 배접했다며 작품은 천 화백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천 화백은 끝까지 가짜 주장을 고수했고, 결국 작가의 심기를 건드린 국현은 그의 주옥같은 그림들을 기증 못 받고 서울시립미술관에 넘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보다 글로벌한 화풍…그림값 더 오를 것”=천 화백의 작품 가격은 이미 수억원을 호가한다. 최근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천 화백은 올해 7~9월까지 석달동안 미술경매시장에서 15억9075만원 어치가 판매되며 김환기 화백(39억7410만원)에 이어 낙찰총액 2위를 기록했다. 7월 K옥션 경매에서는 천 화백의 1989년 작 ‘막은 내리고’가 8억6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미술계에서는 천 화백의 작품이 앞으로도 천정부지로 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술계 한 인사는 “천 화백이 작품 수도 적은데다 관리가 워낙 철저하고 한 점도 허투루 내놓거나 팔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 값은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에서 공부한 천 화백이 고야나 피카소처럼 이국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해외 컬렉터들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채색화가는 “천 화백은 신기(神旗)로 보일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고 심취했다. 현대적인 물감으로 이토록 진채(眞彩)를 한 건 천 화백이 독보적이다. 독창성 면에서나 예술적인 감각 면에서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계 요인도 있다. 대작이 많지 않고 작품에 한국 고유의 정서나 아이덴티티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화가는 “천 화백의 작품은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은 전체에서 몇 점 되지 않는다. 후기 그림들은 감각적이긴 하지만 표현법에 있어서는 깊이가 전작들보다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서 “예술적 가치로는 좋지만 기법 면에서 일본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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