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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관 “10개 안팎 ‘실용적 한정판’…3초백 같은건 만들지 않는다”
0914플래그십스토어에서 시몬느 회장을 만나다

고풍스럽고 거친 질감의 실내…‘문턱’ 낮춘 명품숍
전세계 수집한 소장품들, 제품과 경계없는 어울림
브러싱·스티치 등 수공예 작업 오리지널리티 추구



가방 브랜드 하나를 런칭하기 위해 641일 동안 9번의 미술 전시를 열었다. 한국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을 섭외해 가방을 주제로 매번 새로운 테마의 회화, 설치, 사진, 디자인,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장기 아트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건 국내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 박은관 회장(60)이다. 

19일 청담동 도산공원 앞에 새롭게 문을 연 0914플래그십스토어 2층에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바닷가 집을 콘셉트로 한 건물 내부는 고벽돌과 나무화석, 대리석 등으로 장식돼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8월 말 국내 미술품 컬렉터들의 사교모임 ‘호요미(好樂美)’에서다. 호요미는 사업가, 변호사 등 사회 저명인사 13인이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미술을 공부하고 프라이빗 경매를 진행하는 모임이다.

코치, 마크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등 명품백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으로 30여년 노하우를 쌓고 한 해 7조원 어치 가방(핸드백 소매가 연간총액기준)을 수출하는 제조기업 오너는 호탕하면서 소박했다. 허물없이 어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기업인이자 슈퍼리치, 그리고 이름 난 아트컬렉터인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가방 브랜드 ‘0914’를 세상 밖에 내 놨다. 플래그십스토어도 문을 열었다. 청담동 도산공원 앞이다. 건축가 조성익(홍익대학교 교수) 씨가 설계하고 건축집단MA(대표 유병안) 등이 내부 인테리어를 맡았다. 19일 0914플래그십스토어 VIP 오프닝을 2시간 앞둔 오후 4시, 박 회장과 함께 건물 곳곳 ‘숨은 보물찾기’에 나섰다. 


▶오래된 성(城)처럼 고풍스럽고 아늑한 공간, 0914 플래그십스토어=지하 4층, 지상 4층으로 이뤄진 0914플래그십스토어의 콘셉트는 바닷가의 집이다. 지붕 모양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입면에 각기 다른 크기의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들은 이 곳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0914플래그십스토어는 박은관 회장을 꼭 빼닮았다. 청담동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이 대개 갖고 있는 위화감이 이 공간에는 없다. 수십년 된 고벽돌과 나무들로 꾸며진 공간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콘크리트 골조 마감은 그대로 노출돼 있고, 거친 질감의 나무벽체에 반광 브라운티니 대리석, 원목 마루 등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특히 내ㆍ외부의 경계를 없앴다. 문턱 높은 여느 명품숍과는 다른 모습이다. 외부에서 지하 1층으로 골목길 같은 좁고 긴 계단을 통해 카페, 레스토랑, 남성매장이 이어진다.

유럽의 오래된 와인셀러를 연상케 하는 지하 2층 공간에는 공방이 들어섰다. 장인들이 직접 가방을 만들고 수선도 해 주는 곳이다. 바로 앞에 마련된 라운지룸은 고객들의 쉼터다. 아무나 들락거릴 법한 이 공간마저 고급스러운 가구와 오브제들로 채워 놨다. 박 회장은 “시몬느는 안 하면 안했지 할거면 제대로 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압권은 박 회장이 헤럴드경제에 최초로 공개한 지상 4층 펜트하우스다. VIP 미팅이나 호요미 정기모임 등을 위해 마련된 사적인 공간이다. 워터가든이 보이는 미팅룸 공간 위는 너와 지붕을 이었다. 프라이빗 파티 공간으로 꾸민 옥상정원은 갈대 숲으로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하 4층부터 지상 4층까지 0914플래그십스토어는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드는 것에 대한 존중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아트컬렉터 회장님,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없애다=0914가 F/W 컬렉션으로 선보인 제품은 총 630여종이다. 한 시즌 컬렉션으로는 방대한 양이다. 박 회장은 0914 컬렉션과 함께, 수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작품들로 전체 공간을 채웠다. 그림, 조각 등 소장품만 40~50점. 전체 소품은 300여점에 달한다.

아트피스들은 언뜻 보아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없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꽃 조각이 1층 후미진 구석 공간에 자리잡고 있고, 1층에서 2층까지 연결된 메인 벽면엔 0914 가방들 사이로 국내 작가 박승모, 이진용의 작품들이 교묘히(?) 섞여 있다. 지하 2층 공방 앞에 놓여진 재봉틀 하는 여인 조각상은 박승모 작가가 1년 반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0914플래그십스토어의 시그니처 같은 작품이다. 특히 4층 펜트하우스에는 철판산수화 조환 작가의 부조 작품이 운치를 더했다.

이 밖에 한국작가 홍경택과 일본작가 토시유키 코니시의 페인팅, 러시아작가 블라드미르 쿠쉬의 조각작품 등도 숨은 보물이다.

파리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오브제’ 등에서 ‘득템’해 온 수십만년 전 나무 화석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들, 장미나무로 만든 입체 조형물까지 안목 높은 아트컬렉터 회장님의 취향은 ‘럭셔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철학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독창성…3초백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0914는 고급 원단에 유니크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가격대도 1000만원대 특정 고가라인을 제외하면 40만~100만원 선이 대부분이다. 가격경쟁력이 탁월하다. 박 회장은 “원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낮은 소매가지만, ‘프롬 더 팩토리 투 더 컨슈머(From the factory to the consumer)’를 할 수 있는 시몬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0914의 디자인은 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디테일이 많은 것도 있다.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면서 소박한 것, 러스틱(Rustic)한 것이 0914의 콘셉트다. 대신 브러싱(Brushing)이라던지 그라인딩(Grinding), 스티치(Stitch) 같은 수공예 작업에 방점을 뒀다. 우리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독창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3초백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스타일마다 에디션도 10개 안팎이다. 모든 제품이 한정판인 셈이다.”

가방에 대한 박 회장의 철학은 확고했다. 앞으로 시몬느와 0914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방은 담는 기능, 실용성이 가장 중요하다. 삶의 가치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 나의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내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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