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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구벌 거리에서…가을하늘 아래 ‘김광석’을 그리다
‘시간이 멈춘’ 대구 당일치기 여행

방천시장 일대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조형물·벽화…명곡 들으며 시간여행

다섯가지 코스 이뤄진 근대골목 투어
이상화고택·계산예가 등 볼거리 다채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 고작 300m 남짓 되는 이 길을 걷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김광석(1964-1996) 때문이다.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제목만 이어 붙여도 시(詩)가 되어 가슴을 적시는 명곡들을 남겨놓고 너무 빨리 떠나 간 천재 가수 김광석이 그 곳에서 활짝 웃고 있다. 10월, 금요일 오전 10시 대구 김광석길. 거리는 가을 햇빛으로 충만했다.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 방천시장 일대 벽화거리인‘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김광석을 다시 떠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다. 그 길 벽면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가 적혀있다.

▶김광석, 달구벌에서 영원히 살다=중구 방천시장 일대 벽화거리인 김광석길의 정확한 명칭은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다. 김광석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다’는 의미와 김광석을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섞였다. 김광석길은 2008년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정돼 추진됐다. 매년 새로운 벽화가 계속해서 다시 그려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유독 활짝 웃는 김광석 초상화가 많아졌다. 

김광석이 포장마차 주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손을 내밀어 음식을 건네 받는 것 같은 착시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재밌다.

사실 김광석이 대구 출신이라는 것만 빼면, 대구와 인연이 그렇게 깊진 않다. 김광석은 대구 중구 대봉동(달구벌대로)에서 태어났다. 방천시장에서 전파사를 하던 아버지와 함께 다섯살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김광석길이 조성된 골목은 김광석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다.

동성로 도심에서 명덕로 대백프라자 방향으로 인적 드물고 후미진 골목이 김광석 벽화로 다시 태어났다. 초상화와 조형물 70여점으로 채워진 거리에서 때때로 젊은 악사들의 버스킹 공연이 펼쳐진다. 골목 골목 예쁜 카페는 물론, 아폴로, 쫀드기를 파는 ‘추억 돋는’ 과자 가게도 있다.

김광석길 입구에서는 기타를 치며 ‘사랑했지만’을 부르는 김광석의 브론즈 조형물이 사람들을 반긴다. 김광석이 2집 타이틀곡 ‘사랑했지만’의 후렴구를 부르는 장면을 2010년 손영복 작가가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이다.

길에 들어서면 김광석의 명곡들이 귀를 먼저 사로 잡는다. 가게마다 제각각 음악을 틀어 내보냈다면 소음처럼 들릴 수도 있었을텐데, 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한 곡씩 흘러나오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겨도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듣는 게 가능하다.

벽화마다 발길을 붙드는 통에 길을 다 걸어 나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벽화를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를 찍다보면 몇 십분이 훌쩍 간다. ‘바하의 선율’ 같은 김광석 노래 제목을 딴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다보면 반나절의 시간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김광석길을 비단 김광석을 알고 그를 추모하는 이들만이 찾는 건 아니다.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처음 불렀던 1994년도 쯤 태어났을 법한 20대 청춘들,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난 어린 학생들도 김광석길을 찾는다.

김광석길에는 청춘의 사랑이 넘쳐난다. 사랑의 흔적은 벽 여기저기에 있다. 자물쇠도 걸어놓고 낙서로도 남겨놨다. ‘성준♡민경’, ‘상훈♡윤지’ 같은 식이다. 비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그 곳에서 영원으로 붙들어 매어 있다. 

이상화 시인 고택 가는 길.

▶시간이 멈춘 곳, 그곳엔 이상화도 있고 서상돈도 있다=대구는 시공이 혼재돼 있는 도시다. 통유리로 된 고층 건물들 사이 사이에 붉은 벽돌의 근대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 묘한 풍경은 대구 근대골목을 따라가면서 만끽할 수 있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5가지 코스로 이뤄져 있다. 그 중에서도 1.64㎞ 거리의 제 2코스 ‘근대문화골목’이 가장 인기가 많다.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주택, 3ㆍ1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를 거쳐,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계산예가, 뽕나무 골목, 약령시로 이어지는 코스다. 비교적 짧은 코스지만 볼거리가 가득하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남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동산 청라언덕은 대구에 기독교가 뿌리 내리게 된 본거지다. ‘동무생각’의 노랫말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구 출신 음악가 박태준(1900-1986)이 학창시절의 로맨스를 담은 노래가 바로 동무생각이다.

언덕에 올라서면 푸른 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는 미국 선교사 주택들이 있다. 콘크리트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들로, 1910년 선교사 블레어, 챔니스, 스윗즈가 살던 곳을 지금은 의료, 선교 관련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100년 넘은 북아메리카산 아까시나무(아카시아), 진분홍 배롱나무 등이 오래된 정원을 지키고 있다.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 3ㆍ1만세운동길을 지나면 길 건너편에 계산성당이 있다. 1899년 로베르 신부가 한옥으로 지은 천주교 성당이다.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돼 지금에 이르렀다. 고딕 양식으로 우뚝 솟은 쌍탑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성인들이 한복 입은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항일시인 이상화 선생의 초상화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 구절이 벽면에 새겨져 있는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계산예가가 나온다. 개발정책이 추진되며 초고층 건물이 건설될 때 철거될 뻔 하던 것들인데,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계산예가 전시관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해방이후 한국의 모습들을 영상과 자료로 만날 수 있다.

한약 냄새 가득한 약령거리를 지나 중앙대로길로 걷다보면 향촌문화관이 나온다. 대구 근대 최고의 상업지였던 옛 향촌동 중앙로 일대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대구 근대투어의 정점을 찍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50년대 맞춤양복점이 즐비했던 중앙로의 명통구리양복점, 고급시계와 금은보석을 팔던 미성당, 윤보석, 황금당이 나란히 들어섰다.

자유극장 옆 골목에 있던 술집 ‘카스바’에선 순대를 안주삼아 탁주를 즐기던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1955년초 화가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를 캔버스 삼아 그림(은지화)을 그렸던 화월여관 골목 앞 백록다방은 백조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성업’ 중이다. 



☞꼭 가봐야 할 곳, 믹스카페 북성로

중구 북성로에 위치해 있는 ‘믹스카페(Mixcafe)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건물과 1950년대 건물이 섞여 있는 곳이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스터디룸과 다다미방, 3층은 갤러리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믹스카페 북성로의 다다미방 모습.

1950년대 콘크리트로 지어진 카페 전면부 건물에 1910년대 일제강점기 목조 건물이 붙어있는 모습이다. 카페 후면부에는 작은 마당이 들어앉아 있다. 일제 강점기 합자회사인 소림화왕원 소유의 땅이었던 곳이다. 근대 건축물의 멋을 살리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공간 구석구석에서 묻어난다. 2층 다다미방은 대추나무로 만든 좌식 테이블과 함께 근대 골동품들이 가득해 고풍스러운 박물관에 온 느낌이다. 테라스 풍경도 일품이다. 노을질 무렵 테라스에서 드롭커피 한잔과 함께 가을의 낭만을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다.


글ㆍ사진(대구)=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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