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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한승원, 25년전 쓴 희곡 ’아버지‘ 장편소설로 출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밑으로만 밑으로만 흐르는 물처럼 산 자투리인생 김오현의 삶을 아들을 통해 조명해 본 것입니다. 그런 김오현은 제 분신이기도 하고요.”

올해 희수(77세)를 맞은 소설가 한승원이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를 냈다. 남로당원 아버지를 둔 한 남자의 이야기로 25년전 쓴 희곡 ’아버지‘를 장편소설로 재구성했다.

한승원 작가는 19일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의 기원을 먼저 들려줫다. “고향 동네에 유치라는 마을이 있는데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빨치산의 활동이 왕성했던 곳이었어요. 그런 데서 나고 자란 어느 남로당원의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 김오현은 시대 순응형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성적인 수모를 당하고 옆집 노총각에게 아내를 추행당해도 그저 묵묵히 자신만을 탓하며 엎드린 채 살아간다. 할아버지 손에 자란 김오현은 한 맺힌 할아버지의 유훈대로 가능한 많은 자식을 낳는데 열중한다. 오현은 다만 끊임없이 자식을 낳는 것으로 존재증명을 할 뿐이다.

소설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칠남이라는 아홉번째 아들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그 아들은 산아제한 시대에 김오현이 예비군 훈련에 나갔다가 정관수술 유혹을 뿌리치고 낳은 아들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촛불 시위, 희망버스, 강정마을, 세월호 현장 등을 쫓아다닌다. 김오현은 안 낳은 것으로 치겠다며 목을 조르기까지 한다. 권력에 대드는 건 그에게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한 씨는 ’잉여인간‘ 김오현의 인생,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다. 6.25전쟁기 좌우익 갈등의 이야기가 어느 한 쪽으로 휩쓸려 서술돼온 것과 다르다. 세상에 순응하되 가장 지독하고 원초적인 방식의 저항을 보여준 것이다.

이 작품은 소설로 완성하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한 씨는 “줄거리에 얽매이다 보면 정서라든지, 소설이 가져야 할 아름다움이라든지, 문장의 묘미라는게 가벼이 다뤄질 수 있다“며, ”몇 달 지나서 읽어보면 부족한 점이 많거나 사건을 잘못 해석한다든지 하는 일이 나타나 바로 잡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내가 쓴 글을 성난 얼굴로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배경이 된 마을 유치는 지금은 댐건설로 수몰됐다. 빨치산과 경찰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 댐에 잠겨 있는 것이다. 한 씨는 김오현의 삶이 주는 메시지를 화해로 해석했다. ”아픔들이 어떤 형태로든 승화돼야 하지 않을까, 물에 잠겼다는 것은 물처럼 융해되고 화엄 세상으로 나아가는 융화의 의미가 아닐까요.“

쉰일곱살이던 20년전, 고향 장흥으로 내려간 그는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산책하고 소설만 생각하죠. 글을 쓰는 한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겁니다. ”

한 씨는 이번 작품이 젊었을 때 작품보다 더 감성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쓴 글에 대해 성난 얼굴로 들여다 본다는 것. 감수성이 둔해지지 않았나 눈을 부릅뜨고 살피는 것이다. 매년 책을 낼 정도로 왕성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그는 어머니에 관한 장편소설을 현재 집필중이라고 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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