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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세이(洗耳)·세초(洗草)
영화 ‘사도’에는 두 가지 ‘씻는 일’이 나온다.

영조는 귀를 씻는다. ‘세이(洗耳)’다. 귀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물로 귀를 씻었다.

영조가 만든 일이 아니다. 중국 고사전(高士傳)에 전하는 고사(古事)다.
“중국 고대 요임금은 허유에게 자기 뒤를 이어 천하를 맡으라 했다. 허유는 거절하고 영천(潁川)으로 가 귀를 씻었다. 더러운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마침 소를 몰고 가던 친구 소부가 이유를 물었다. 허유가 사실대로 얘기하니, 소부는 그런 귀를 씻은 물 역시 더러우니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더 상류로 올라갔다”

영조는 종이를 씻는다. ‘세초(洗草)’다.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임오화변(壬午禍變)의 기록을 물에 씻어 지운다. 이를 바라보는 영조와 세손(정조)의 표정이 먹먹하다.

세초는 조선시대 사관들이 쓴 기록을 지우는 일이다. 사관들은 기록을 두 벌 작성했다. 한 벌은 자신이, 다른 한 벌은 춘추관(春秋館)이 보관했다. 이 기록이 수초(手草)다. 왕이 승하하면 수초를 바탕으로 초초(初草), 중초(中草)를 거쳐 실록이 완성됐다. 이후에는 수초·초초·중초 등을 모두 세초했다. 세초는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지금의 세검정 개천에서 행해졌다. 사초의 유출을 막고, 추후 시비를 예방하는 게 세초의 목적이다.

영화 ‘사도’에서 세이는 대립하는 영조와 사도세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도세자의 말을 들은 후 영조는 귀를 씻으며 힐난한다.

반면 세초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내미는 화해의 손짓이다. 세손(정조)의 요청에 의한 것이어도 그렇다. 영조는 세초를 허락하며 눈물을 비오듯 떨궜다 한다.

정조는 왕에 오른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존에 나섰다. 즉위한 날 신하들에게 내린 문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김필수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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