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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담동 명품거리에 녹슨 판잣집…삶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연기백 작가 기획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페라가모….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즐비한 청담동 패션거리에 양철 지붕을 댄 ‘판잣집’이 들어섰다. 교남동, 가리봉동 일대 허물어진 옛 집들에서 벽지를 찢어오고 장판을 뜯어 와 만들었다. 미술가 연기백(41)이 지은 ‘곁집’이다.

집이 들어선 곳은 송은아트스페이스다.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2015년 국내 작가 기획전으로 연기백의 ‘곁집’을 열었다. 

곁집 52-106 열 번째 장소,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5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연기백은 ‘금천예술공장(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의 작가 레지던시)’이 낳은 스타 작가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작가도 이 곳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출신의 연기백은 2013~2014년 입주 작가로 활동하며 독특한 작업으로 주목 받았다.

연기백은 특정 장소에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흔적들을 수집해 그 안에서 사회적인 맥락을 짚는 작업을 해 왔다. 저고리 직물을 한 가닥씩 풀어헤쳐 재구성한다거나(漂, Fadeㆍ2008), 자개장의 자개를 일일이 떼어 내고 낚시 줄에 꿰어 원래 있던 모습으로 공중에 재배열하는(그린하이츠ㆍ2011) 등, 다분히 집요하고 강박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설치 등 신작 9점은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수십년 간 여러 겹으로 덧대어진 도배지들을 작가가 직접 떼어내 물에 불리고 하나씩 분리한 후 그 조각들을 낚시줄로 매달아 놓은 작업(교남 55 + 가리봉 137)은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장기 도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작가는 벽지 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을 거슬러가며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교남 55 + 가리봉 137, 도배지, 나무, 가변크기, 2015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이러한 작업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익명의 낙서들도 들여다봤다. 여공들이 살던 집의 벽지, 철거를 앞둔 건물 외벽, 빈집 출구를 막아놓은 합판, 한강 다리까지 다양한 공간에서다. 작가는 이 낙서들을 비닐에 본 떠 버려진 장판에 새긴 후 오려냈다. 그리고 낙서는 낙서대로 다시 벽에 붙였고, 장판은 장판대로 전시장에 내 놨다(낙엽이 달을 부수다). 

낙엽이 달을 부수다, 장판, 가변크기, 2015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낙서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쫌만 버티자! 꼭 살거야’, ‘무슨 인간이 이 따위인가’, ‘죽고 싶으면 연락해 도와 줄게’, ‘홀로 춤추는 사람을 홀로 춤추게 두지 말라’…. 마포대교에서 가져 온 낙서에는 ‘용기란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라는 내용도 있다.

발길을 오래 붙드는 작품은 ‘물 이용방식 세번째’다. 전시장 2층부터 4층에 걸쳐 설치됐다. 허공에는 녹슨 빗물받이들을 이어 놓고, 바닥에는 일제시대 개량 한옥에 쓰였던 함석지붕을 깔아놨다. 빗물받이 수로를 통해 함석지붕 위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구조다. 작가가 벽지를 떼어낼 떼 썼던 그 물을 이용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십수년전 판잣촌의 이야기, 그 시절 아련한 가난의 기억이 재생된다. 

물 이용 방식 세 번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5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작가는 “내가 가난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곁집을 짓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나의 작업 태도인 것 같다”라며 “가난의 상징을 걷어내면 판잣집은 그저 우리 주변 삶의 이야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8일까지 이어진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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