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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60. 이방인 태운 ‘파타고니아의 늙은 말’은 그저 터벅터벅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엘파타고니아 평원으로 말을 타러 간다. 말로만 듣던 아르헨티나의 대평원이다. 멀리 보이는 평원의 끝에는 파타고니아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말을 타러 왔는데, 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파타고니아의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편서풍이 매섭게 불어온다.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세찬 바람 속에서 양들이 울어댄다. 이렇게 가까이서 양을 본 일이 없다. 귀여워서 다가가려 하면 멀리 달아나는 겁쟁이들이지만 자기들끼리는 계속 부대끼거나 뿔을 들이대며 힘자랑도 한다. 나란히 앉아 눈 쌓인 먼 산을 응시하는 양들은 이미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들은 평원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의사항을 듣고 도움을 받아 말에 오른다. 말이 영화처럼 이 평원을 질주하기를 바라지만, 외국인들을 태운 늙은 말들은 그저 낙타의 속도로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다. 내가 올라탄 말은 그저 앞에 가는 말의 꽁무니만 쫒는다. 그게 답답하지만 만일 이 말에게 내가 원하는 “불타는 자유의지”란 게 있었다면 나는 아마 낙상했을지도 모른다. 넓은 평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호수에 이르러 물을 먹게 되기까지 말을 잘 걸어(?) 준다.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 아래 거센 바람을 뚫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준다.


이제 파타고니아와는 작별이다. 언제 다시 여기에 올 일이 있을까? 이 알싸한 공기, 흙내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아마도 파타고니아라는 표제를 달고 기억의 서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우연한 기회에 포장을 풀게 될 것이다. 상상할 수 없었기에 더욱 낯선 풍경, 그래서 날마다 뇌를 자극하던 파타고니아를 기억한다. 여행이란 언제나 그렇지만, 익숙해질 즈음이 이별의 최적기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늘로 파타고니아와는 작별이다. 오후 비행기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평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공항으로 이동한다. 엘칼라파테 공항은 경치도 여느 공항과는 다르다. 파타고니아의 평원과 빙하의 쪽빛 강물을 굽어보며 세찬 바람을 뚫고 이륙한 비행기는 순식간에 날아오른다.
남미는 안데스와 함께 기억될 것이다. 페루 쿠스코를 거쳐 마추픽추에서 절정을 맞는 잉카문명을 보았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티티카카 호수를 거쳐 칠레의 아따까마 사막을 따라 내려왔다. 잠시 산티아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대도시에 들렀고 우수아이아로 날아와 파타고니아 지역에 도착했다. 토레스델파이네(Torres del Faine), 페리토모레노 빙하, 엘찰텐 그리고 여기 엘칼라파테까지, 안데스의 그늘이 아닌 곳이 없다. 남미에서의 지난 한 달이 꿈이었던 듯 안데스도 파타고니아도 멀어져간다. 어느덧 밤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불빛을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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