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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휴에 읽을 만한 책]’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그해 여름, 패러독스의 시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한가위의 풍요로움이 이어지는 연휴, 번잡함에서 벗어나 책과 함께 여유를 즐기기 좋은 때다. 가족과 고향을 마음에 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남은 연휴에 읽기 좋을 만한 책을 골라봤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박완서 외 지음, 한길사) =허기를 달래주는 위로의 맛,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산문집.밥 한그릇에 얽힌 사연을 맛깔스럽게 담아냈다. 소설가 박완서, 최일남, 성석제, 신경숙, 공선옥, 김진애, 주철환, 장용규 등 12명의 글이 담겨있다. 여기에 요리하는 작가 박찬일도 글을 보탰다.

개성음식의 깔끔한 맛을 늘 자랑처럼 얘기해온 소설가 박완서는 이름도 생소한 ‘메밀칼싹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상에 오르던 메밀칼싹두기. 그가 들려주는 요리법은 꽤나 싱겁다. 집에서 맷돌에 갈아 체로 친 메밀가루를 적당히 반죽해 다듬이 방망이로 안반에다 밀어 칼로 썩둑썩둑 썬다. 이를 맹물에 삶아 약간 걸쭉해진 그 국물과 함께 한 대접씩 퍼담아 내는 게 끝이다. 따로 양념장을 곁들이지도 않고 꾸미를 얹지도 않는다. 할아버지 대접에도 색다른게 올라가지 않는다. 머슴이나 집안의 어른이나 평등한 음식이 메밀칼싹두기였다. 대청마루에 앉아 비오는 걸 바라보며 한없이 청승스러워지던 마음은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전의 고적감은 눈독듯이 사라지고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해 여름, 패러독스의 시간(이정은 지음, 나남) =6.25전쟁이 한 마을을 관통하며 어떻게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붕괴시키는지 12살 평범한 시골소녀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정은 소설가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경기도 용인 관곡마을에서 6.25가 터진 1950년 여름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삼촌 이태호는 국군으로 전쟁 초기 임진강 전투에서 낙오됐다가 부대에 복귀하지만 탈영병이란 오명을 쓰게 된다. 고모는 가부장제 문화 속에 기를 못펴고 살다가 공산주의자 윤상현이 그리는 이상세계에 반해 인민공화국에 부역하지만 서울수복 이후 빨갱이로 몰려 갖은 수모를 당한다. 중공군이 내려오자 마을은 다시 새로운 전쟁판으로 바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골짜기 마을로 피난짐을 꾸린다. 피난 중 새기를 집에 두고 온 어미 소는 광란을 일으키고 어린 남동생은 장티푸스로 죽는 등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일찍 철이 든다. 좌우 세력이 엇갈리면서 마을 주민들의 운명도 바뀐다. 고모는 다시 한반 변신을 감행한다. 남녀간의 원초적 욕망과 다양한 인물 군상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적대적 대립 등 대하소설적 구성으로 박진감 넘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 고전 쏙쏙 뽑아 읽기(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번역원이 우리 고전 속 신기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주제별로 엮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우리 고전 쏙쏙 뽑아 읽기’ 시리즈를 내놨다. 우리 고전 속 동물 이야기인 ‘눈 셋 달린 개’는 고전 속에서 사람과 마음을 나누거나 사람이 관찰한 동물 이야기 22편을 뽑아 엮었다. 호랑이, 개, 거위, 말, 자라, 땅벌레 등 선조들이 동물과 함께 지내며 겪은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이다. 이승에서 보살핌을 받은 눈 셋 달린 개가 저승에서 관원이 돼 주인이 살아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사람에게 먹이를 받아 먹던 물고기가 먹이를 준 사람이 홍수로 위험에 처하자 사람으로 변신해 도움을 주는 이야기, 주인이 죽는 것을 목격한 개가 원수를 갚기 위해 관가에 찾아가 신고하는 등 옛 사람들이 동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四十四/백가흠 지음/문학과지성사) =일상을 날카롭게 해부해 심연의 진실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보여온 소설가 백가흠의 네번째 소설집이다. 등단 15년차 사십대에 이른 작가의 자기 성찰이 돋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2011년부터 발표해온 아홉 편의 작품을 담았다. ‘어쩌다 어른’이 된 우울한 사십대를 작가는 고등학생 때 88올림픽을 경험하고 이십대에 외환위기를, 삼십대에 월드컵 응원전에서나 에너지를 발산한 세대로 특징짓는다. 소설 속 ‘사사’(四十四)들은 일정한 성취라든가, 안정이라든가 지천명을 예비하는 차분한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바쁘게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잘못된 인생이라는 좌절을 경험하는 사사들의 면면은 뼈아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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