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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신동빈을 웃겨라’ 된 정무위 국정감사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어느 나라를 응원하죠?”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신동빈 롯데 회장은 요즘 말로 ‘빵’ 터졌다. 시종일관 담담한 미소로 웃음의 선(線)을 지키던 그가 무장 해제된 순간이다.

이날 국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10대 재벌그룹 총수로는 처음으로 신 회장이 출석했다는 점에서다. 시기적으로도 신 회장의 ‘왕자의 난’을 겪은 직후여서 최근 문제된 롯데그룹의 정체성, 지분구조, 순환출자 해소 여부를 두고 여야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박 의원이 한ㆍ일간 축구시합 응원 발언으로 포문을 열자 다른 의원들도 신 회장의 웃음을 노린 ‘한 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유성을 웃겨라’에 필적할만한 ‘신동빈을 웃겨라’가 펼쳐진 것이다.

이어 신 회장의 웃음코드를 저격한 건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다. 신 의원은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에 추진 중인 ‘계양산 골프장’ 건설 계획을 취소하라고 신 회장을 추궁했다. 신 회장은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며 “우리 총괄회장님이 가지고 계시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갑작스러운 민원처리 요청에 당황한 기색도 드러났다.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는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또 다른 증인인 네이버 윤영찬 이사에게 뉴스 편향성에 대해 따져 묻다가 갑자기 신 회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어 네이버의 기사 배열을 빗대며 “신동빈 증인, 롯데마트도 롯데 초코파이만 앞에 놓습니까, 아니죠?”라고 물었다. 급습 질문을 받은 신 회장은 입꼬리가 올라가며 “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의원은 창의적인 질의내용으로 ‘신동빈을 웃겨라’ 미션에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신 회장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의원들과 취재진, 국회 관계자들의 웃음보를 자극했으니 가히 ‘대박’이라고도 칭할 수 있다.

하지만 매순간 실소(失笑)를 자아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비판도 함께 따라왔다. 현장에서는 “의원들의 질의가 결국 우리나라 국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 한 편에서는 “의원들이 개그콘서트로 진출해야 하는데, 왜 국정감사장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바로 다음날 몇몇 의원들은 “편안하게 토론하는 자리를 바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국감보다 개그 욕심이 앞선 국회의원들을 목격한 탓이다.

벌써 국감은 그 전체 기간을 중반을 넘어섰다. 여야가 목이 터지라 외치던 ‘민생국감’과 ‘정책국감’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이미 웃을 만큼 웃었으니 이제는 민생과 정책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a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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