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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55. ‘동물의 왕국’ 티에라델푸에고…야생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우수아이아에서 남은 하루는 국립공원 트레킹을 다녀오고 엘칼라파테(El Calafate)로 이동하는 데 쓴다. 고위도 지역 인공의 흔적이 없는 청정한 자연의 세계로 들어간다.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ierra del Fuego). 우수아이아의 서쪽에 위치한 넓은 공원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마젤란(Magellan)이 세계 일주를 하며 이곳을 지날 때 이 땅의 불빛을 보고 지은 이름으로 그것은 원주민의 횃불이었다고 한다.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는 불의 땅이라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멀리보이는 산꼭대기 만년설의 흰색에 그 회색구름의 색채를 더해 수묵화 같은 장면을 연출할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수 가장자리에 까맣게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홍합이다. 홍합은 바다에서만 사는 줄 알았는데 민물에도 사나 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채 풍경의 일부가 되어있다. 


오후에 엘 깔라페테로 떠나야 해서 가장 짧은 트레킹 코스를 선택해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걷는다. 드넓은 공원이라 셔틀버스들이 다니는 길도 있다. 정류장 역할을 하는 지점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려도 된다. 버스가 지나가니 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조차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다가, 이미 내 발걸음도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일이다. ​


고즈넉한 가을 풍경인 듯, 작은 웅덩이 옆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이 이곳의 거센 바람에 눕는다.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풀들이 이 고요한 들판에 누워 있는 것에도 어떤 식으로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만큼이 지구라면 나는 이 풀밭 어디를 꼼지락거리며 기어갈 작은 곤충은 될까?

야생동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는 데 동물은 만나지 못하다가 서성거리는 새들을 만난다. 이곳의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볼 일을 본다. 안심하고 아플 수 있고 안심하고 죽을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저 새는 최소한 사람이 위험하지 않다고 느끼는 듯하다. 이 국립공원 안에서 이 생물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의 법칙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은 좋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북반구는 겨울인 2월인데, 계절이 반대인 남미는 뜨거운 여름, 여기 우수아이아에서는 늦가을의 스산함을 느낀다. 머리로 인식하는 계절과 피부에 와 닿는 계절이 헝클어져 계절 감각이 무뎌지지만 오늘 마주하는 이 상쾌한 바람과 가벼운 발걸음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이나 좋다. 서너 시간의 짧은 트레킹이지만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솜사탕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트레킹을 마친다. 국립공원을 나와 다시 우수아이아로 돌아간다.


우수아이아에서 엘칼라파테로 가는 교통편은 역시 비행기다. 배낭여행이라고 비행기 이동을 잘 안하지만 이 지역은 워낙 거리가 멀어서 비행기 이동이 편하다. 남미 대륙의 남쪽 삼각지대인 이곳 파타고니아(Patagonia)지방은 바람이 거세고 기온이 낮은 독특한 날씨와 지형으로,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엘칼라파테는 도시의 거의 모든 것들이 여행자를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관광도시다. 거리에는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하러 온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고 있다. 우수아이아보다는 북쪽이라 상대적으로 추위도 덜하다.

오늘 묵는 호스텔은 특이하게도 호스텔과 레스토랑이 복층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이층에 위치한 호스텔의 주방 바로 아래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식당에 앉아 저녁 내내 연주되는 라이브 음악을 공짜로 듣는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다이어리와 아이패드를 펴 놓고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쓴다. 식당이 비좁거나 공용공간이 부족한 경우 대부분은 도미토리 침대에 엎드려 하루를 정리하기도 하는데 오늘 이 게스트하우스는 방보다는 식당 분위기가 맘에 든다.

오전에 국립공원 트레킹 다녀 온 일은 이미 아득해 지고 있지만, 우수아이아에서 엘칼라파테로의 동선은 파타고니아의 거센 바람에 적응하게 한다. 하루에 이틀분량의 삶을 사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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