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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현 왕조 조상은 라마1세... 푸미폰 국왕은 라마9세...‘태국’명칭은 1940년부터
태국 왕조의 기원은 7세기 중국 남부의 티벳ㆍ버마 계열의 남조(南詔)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태국의 영역 내에서 본격적인 기록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13세기다. 수코타이 왕국이 출현한 1220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코타이 왕조에 이어 태국을 통치한 것은 아유타야 왕조다. 1350년부터 1767년까지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 태국을 지배한 왕조로, 14세기 말 수코타이 왕국을 복속시키고 16세기 포르투갈 등 서양과 무역을 개시하기도 했다. 한반도와의 교류도 있었다. 1765년부터 아유타야 왕조 내부에 혼란이 일어나 버마군의 침공이 이어졌고 1767년 멸망했다. 이때 버마군에 대항한 이가 아유타야 왕조의 지방장관이었던 프라야 탁신장군이다. 그는 차오프라야강 하구 서안의 톤부리에 도읍을 건설하고 1776년 왕국을 재통일한다. 하지만 말년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부하들의 반란으로 처형됐다.

탁신을 물리친 이들이 왕으로 추대한 이는 부하 장수인 차끄리(Chakri)였다. 현 차끄리 왕조의 시작이다.

차끄리는 1782년 ‘라마 1세’로 왕위에 올라 지금의 방콕으로 수도를 옮겼다. 캄보디아의 바탐방 지역을 병합하고 버마군의 침공을 격퇴해 현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라마 4세(몽꿋, 1851~1868) 때 영국인 가정교사였던 레오노웬스의 회고록으로 서방에 널리 알려졌다. 1944년에 소설이 나왔고 1946년 ‘애나와 시암의 왕’이란 영화가 제작됐다. 1951년 뮤지컬도 나왔고 율 브린너와 데보라 커 주연의 영화 ‘왕과 나’는 1956년에 만들어졌다.

라마 4세는 부인이 모두 32명, 자녀들은 82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즉위 전 서양문물을 연구하기도 했던 그는 국내 정치 및 경제개혁을 추진했고 서방 각국과 조약을 맺었다. 1855년엔 영국과 우호통상조약인 ‘보링(bowring)조약’을 맺었는데 이는 태국 최초의 초약이지만 불평등 조약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1856년 이 조약을 비준할 당시 그는 처음으로 ‘시암’(Siam)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명칭인 태국(Thailand)는 1940년부터 사용됐다.

라마 5세(출랄롱꼰, 1868~1910)는 태국 근대화를 이끈 국왕으로 평가받는다. 왕 앞에서 기는 행동을 금지했고 노예제 폐지에도 힘을 기울였다. 1896년에는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태국의 중립지대화 약속을 받아냈다. 철도를 건설하고 의무교육도 시행했다.

라마 6세(와찌라우트, 1910~1925) 때인 1917년 태국은 연합군에 가담해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국제연맹의 창설회원국이 됐다.

라마 7세(쁘라자티폭, 1925~1935)는 태국 최후의 절대군주로 기록됐다. 1932년 민주개혁 쿠데타가 발생, 입헌군주제가 도입됐고 1935년 영국 체류 중 퇴위를 선언했다. 이어 그의 조카 라마 8세(아난다 마히돈, 1935~1946)가 10살의 나이로 즉위해 1945년 귀국했으나 이듬해 궁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동생인 라마 9세(푸미폰 아둔야뎃, 1946~)가 왕위에 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태국에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군주 4명에게 ‘대왕’의 칭호를 붙이다. 수코타이 왕조의 람캄행 대왕, 아유타야 왕조의 나레수안 대왕, 톤부리 왕조의 탁신 대왕, 차끄리 왕조의 출랄롱꼰 대왕 등이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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