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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13>태국(상)] 68년 통치 푸미폰 국왕은 아버지이자 신…모독하면 중죄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우리는 왕의 충실한 종복, 경하드리세.

영토의 수호자이시고 초안적 덕목을 갖춘 전능한 군주에게.

그의 자애로운 지도 아래서 우리는 보호받고 번영과 평화를 누린다.

전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라마 9세를 찬양하는 ‘국왕찬가’는 태국 내 국왕의 입지와 국민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왕은 국민들의 아버지이자 불교의 법도 아래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이며, 태국 민족주의의 중심이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이다.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대관식. [사진=위키피디아]

국왕을 모독하는 것은 국왕에 의한 통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은 것. 때문에 정부는 왕에 대한 모독을 법으로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지난달엔 왕실 모독의 죄를 물어 징역 30년형에 처하기도 했고 심지어 왕세자비 가족들조차도 불경죄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1932년, 700년의 절대군주제를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라마 7세, 그리고 형인 라마 8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46년 즉위한 푸미폰 국왕. 그는 10여 차례의 군부 쿠데타에도 68년이란 긴 시간동안 왕국을 통치하며 세계 최장수 국왕으로 건재하고 있다. 태국 역사에서도 최장수 국왕이다.

푸미폰 국왕의 상징. [사진=위키피디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재위까지…=격동의 현대사만큼 푸미폰 국왕의 즉위과정도 극적이다.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했고 즉위 이후 젊은 시절은 수많은 쿠데타와 함께했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1932년에 절대군주제가 폐지됐고 당시 국왕이던 라마 7세는 1934년 혁명 주체세력과의 갈등을 빚어 영국으로 망명, 푸미폰왕의 형인 아난다 마히돈(라마 8세)에게 왕위를 넘긴다.

젊은 시절의 푸미폰 국왕과 아내 시리낏 왕비. [사진=위키피디아]

사실 푸미폰 국왕과 마히돈 국왕의 아버지인 마히돈 아둔야뎃(송클라 왕자)은 출라롱꼰(라마 5세)의 77명의 자녀 중 69번째였다. 그만큼 마히돈 왕자의 왕위계승 가능송은 낮았다. 하지만 라마 8세는 내각과 의회의 결정에 따라 10살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왕위계승 후에도 유학을 계속하던 라마8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야 귀국을 한다. 그리고 불과 1년만인 1946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19세의 푸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라마 8세의 죽음은 아직도 미결사건으로 남아있다.

 ▶이상적인 통치사상, ‘탐마라차’와 ‘테와라차’를 구현하는 왕=‘젊은 국왕’ 푸미폰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50년에야 즉위식을 거행했다. 70년의 재위 기간이 지나면서 그의 권위는 어느 누구도 위협할 수 없을만큼 확고하며 절대적이다.

푸미폰 국왕에 대한 존경은 수코타이 왕국 이래 수백년 간 이어져 온 태국 국민들의 ‘탐마라차’라는 사상에서 비롯된다. 탐마라차는 불교에서 나온 이상적인 국왕의 상(想)이다. 국왕은 아버지가 자식을 다스리는 것처럼 국민을 통치하고, 국민들은 국왕을 아버지처럼 존경한다.

여기에 왕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테와라차란 개념이 아유타야 왕국 이후 왕권개념으로 확립됐다. 덕분에 태국에서 왕은 세속의 신으로 여겨져 경외의 대상이 됐다.

아울러 불교도 왕권의 절대성을 지지하는 기반이다. 태국 국민은 90% 이상이 불교신자들이다. 역대 태국 국왕들은 즉위 전 또는 즉위 후에도 출가를 하는 관례가 있기도 했다.

태국 헌법에는 “국왕은 불교도로 종교의 수호자”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탐마라차는 불교의 법을 시행하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국왕은 이를 지지하면서 자연스레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태국 국기에서도 나타난다. 태국 국기의 3가지 색 중 적색은 국가, 백색은 종교, 청색은 국왕을 상징한다.

▶‘아버지’같은 일꾼, ‘국왕개발계획’에 역점=이런 이상 왕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불기 2512년(서기 1969년)부터 국왕개발계획(Royal Development Project)을 실시했다. 지방 순시를 통해 낙후된 지역을 관찰하고 개발하려는 푸미폰 국왕의 노력이다. 이 계획은 ‘왕실주도계획’, ‘왕실프로젝트’, ‘왕실후원프로젝트’ 등으로 나뉜다.

왕실주도계획은 왕이 직접 자금을 투입해 초기계획을 시행하고 결과가 좋으면 정부기관을 통해 확대하는 방식이다.

왕실프로젝트는 초기 아편생산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됐다가 고산족 복지개선 사업으로 발전했다.

프로젝트가 다루는 사업들은 매우 다양하다. 수력발전소 건설 등 수자원 개발계획부터 황무지 개간 등을 통한 토지개발계획, 인공강우연구개발계획 등과 같은 농업개발계획, 농업 기술 연구 등 연구개발계획, 위생 및 보건 복지가 열악한 지역에 의료단을 파견하는 보건ㆍ위생개발계획 등이 실시됐다. 교육개발계획과 고산족들을 위한 복지계획 등도 이뤄졌다.

차이파타나 재단 최고의장 마하 차끄리 시린돈 공주. [사진=차이파타나 재단 홈페이지]

이를 위해 로열프로젝트재단, 차이파타나재단 등이 설립돼 계획들을 주도하고 있다. 1988년 푸미폰 국왕이 설립한 차이파타나재단에는 딸 마하 차끄리 시린돈 공주가 최고의장에 임명돼 왕의 뜻을 잇고 있다.

푸미폰 국왕의 활동, 농촌 시찰. [사진=국왕개인비서실(OMH)]
푸미폰 국왕의 활동, 농촌 시찰. [사진=국왕개인비서실(OMH)]
푸미폰 국왕의 활동, 농촌 시찰. [사진=국왕개인비서실(OMH)]
푸미폰 국왕의 활동, 농촌 시찰. [사진=국왕개인비서실(OMH)]
푸미폰 국왕의 활동, 농촌 시찰. [사진=국왕개인비서실(OMH)]

▶도마에 오른 ‘왕실모독죄’=푸미폰 국왕이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왕실모독죄’ 집행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다.

태국 헌법 6조는 왕은 지존의 존재이며 누구도 왕의 지위를 침해할 수 없고, 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태국 형법 112조는 국왕, 왕비, 그의 상속자나 섭정을 비방하고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형벌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지난해 5월 집권한 현 군부정권은 집권이후 수십 명을 왕실모독죄로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2월엔 태국 법원이 탐마삿 대학교 연극반원 2명에게 연극 형식을 빌려 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3개월을 선고했다. 이들은 1973년 발발한 학생 민주화운동 40주년인 지난 2013년 교내에서 ‘늑대 신부’라는 연극을 공연했다가 지난해 8월 왕실모독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달엔 마하 와찌라롱꼰 왕세자의 전 부인 스리라스미 전 왕세자비의 부모도 왕실모독죄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왕세자비를 돌봤던 시종도 불경죄로 체포됐다. 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왕실을 모독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법원이 남성 1명과 여성 1명에게 각각 30년, 28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80세 생일에 근위대를 사열하는 푸미폰 국왕. [사진=게티이미지]

그러나 이에 대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UNHCHR)는 인권침해를 우려하며 개정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보복, 정적 제거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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