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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재림ㆍ곽경택 감독이 탐낸 연극 ‘춘천 거기’…김한길 연출 “‘거울보기’같은 작품됐으면”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사랑 때문에 힘들고 상처받고 울고불고 싸우고 난리치더라도, 사랑에 푹 빠져서 그 감정이 흐르는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연극이다”

“시종일관 웃게 되고, 눈물도 찔끔 흘리고, 중간에 기겁하고 놀라기도 하는…모든 재미가 다 있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관객들이 남긴 연극 ‘춘천 거기’ 관람후기들이다. ‘춘천 거기’는 특별한 것 없는 네 커플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자지러질 듯 웃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여자 때문에 주사(酒邪)를 부리는 찌질남 등 주변에서 본 듯한 캐릭터들에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한 연극은 아니다. 극장을 나설 때 즈음에는 왠지 모르게 아련한 감정이 밀려들게 한다.

[사진제공=스토리피]

연극 ‘춘천 거기’는 영화로도 제작된다. 영화 ‘관상’, ‘우아한 세계’ 등을 만든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춘천 거기’ 극본을 쓰고 연출한 김한길씨는 “관객들에게 ‘거울보기’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활인으로서 조폭의 애환을 그린 ‘우아한 세계’처럼 생활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예쁘거나 잘생긴 배우가 나온다면 감정이입이 어렵겠죠.(웃음) 한 감독은 각각 다른 사랑을 하던 아홉 남녀가 춘천 펜션이라는 한 공간에 모이고, 전쟁같았던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고 싶다고 해요”

연극 ‘춘천 거기’의 탄생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 매니저로 유명세를 탄 배우 김강현이 산파였다.

[사진제공=스토리피]

“어느날 강현이가 친구와 2인극을 하겠다며 극본을 달라고 했어요. 제가 연극 ‘라이어’에 출연하면서 다달이 월급을 받을 때라 투자도 하고 연출도 맡겠다고 했어요. 그러다 판이 커져서 배우 몇명이 더 모이게 됐죠. 처음에는 남자배우들만 모여서 ‘활극을 써야 하나’ 했어요”

당시 김 연출은 “내가 형이니까 100만원 낼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후배, 친구들이 하나둘씩 100만원을 보탰다.

“최종적으로 1100만원 정도 모였는데 사실 어이없는 제작비였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기운이 모인 것이 힘이 된 것 같아요. 3주 공연하면서 제작비를 회수하고, 연장 공연에 들어갔으니까요”

이듬해인 2006년 ‘춘천 거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올해의 예술상’도 수상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MT의 성지 춘천이다. 하지만 ‘춘천 거기’ 초연 당시까지 김 연출은 춘천에 가본 적이 없었다.

[사진제공=스토리피]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극단 생활을 했어요. 제대하고 뒤늦게 서울예대에 입학했지만 낭만적인 대학 생활은 없었죠. 그런데 주변 선배들의 대학시절 추억담에는 춘천이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저한테 춘천은 어떻게 보면 환상 속의 여행지였어요”

‘춘천 거기’의 하이라이트는 춘천 펜션 장면이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게임을 할 때는 그 사이에 껴있는 듯 신나게 웃다가, 귀신 이야기를 할 때는 놀라 비명을 지른다.

“펜션 장면은 배우들과 연습하는 과정에서 대사를 하나하나 짜면서 생동감이 살아났어요. 영민이 현충사에서 ‘잉어한테 침 뱉으면 먹는다. 볼래’라고 하는 장면은 극단 선배 누나의 경험을 저작권료 500원 주고 사와서 살을 붙였죠”

이처럼 주변 인물들의 경험담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10년 전에 쓰여진 극본이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초연에 비해 바뀐 대사라고는 수진이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지현우’에서 ‘김수현’으로 바뀐 것뿐이다. 삼각관계, 연상연하 커플, 이제 막 시작한 풋풋한 커플 등을 보며 관객들은 자신 혹은 주변 인물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2005년 당시 공연을 보러온 한재림 감독도 작품에 매료돼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하지만 ‘우아한 세계’ 제작 일정 등으로 영화화는 지연됐다. 이후 곽경택 감독이 판권을 사들였지만 역시 제작이 미뤄지다 계약이 만료됐다. 지난해 김 연출과 한 감독은 함께 술을 마시던 도중 영화화를 재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춘천 거기’ 외에도 김 연출은 연극 ‘장군슈퍼’, ‘임대아파트’ 등에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 호평을 받아왔다. 2007년 그가 만든 극단 이름도 청국장이다. 그는 김광보 등 스타 연출가들을 배출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4기 출신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실험 중에 대중극도 하나의 실험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진지한 연극을 하려고 하면 깊이도 없는데 깊이있는 척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먼저 들기도 해요. 벌써 연극을 아는 척은 못하겠어요. 돌아서면 모르겠는데요. 뭐.”

겸손하면서도 유쾌한 김 연출이 10년 동안 숙성시킨 연극 ‘춘천 거기’는 오는 10월 4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공연한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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