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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이종덕] 동숭동,그곳엔 아직 나의 젊음이…
짧고 강렬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걷어냈던 이불자락을 턱 아래까지 끌어당겨야 편안한 새벽잠에 빠질 수 있다.

필자는 이 계절이 되면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시절을 떠올리며 오랫 동안 감회에 젖어 있곤 한다.

1983년 문공부에 있다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겼을 때 휴식시간이 되면 틈틈이 마로니에 숲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편히 앉을 만한 의자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광장이 되어 그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동숭동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해 동아그룹 전 회장 최원석씨의 동생 최원영씨는 음악 잡지 <객석>을 창간하기 위해 필자를 찾아왔었다. 공직을 떠난 몸이라 직접 도와주기는 곤란했지만 당시 잡지 창간과 관련된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문공부 관계자들과 등록 절차를 소상히 알려줬다.

최원영씨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어했다. 필자는 마로니에 숲에 작은 공원을 조성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의 후원을 받아 큰 돈 들이지 않고 만들어진 공원이 지금은 썩 훌륭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곳에 공원을 조성한 최원영씨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세워 줬다.

문공부를 떠나 삭막하기 그지없는 동숭동으로 옮겨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섭섭한 생각도 많이 나지만, 최원영씨와의 우연한 만남이 훗날 이렇게 좋은 숲을 이루게 되었으니 필자의 운명은 되돌아가도 문화와 맞닿아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동숭동을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일화가 한 가지 더 있다. 지금의 샘터 건물 옆에는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 있었는데,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야 할 이곳에 자동차공업협회와 같은 건물이 대로변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필자는 당시 문공부 장관이었던 이진희 장관에게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 있는 자리로 예총회관을 옮기면 근처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마로니에 공원, 그리고 예총회관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동숭동도 문화의 거리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라는 제안을 했다. 이 의견이 수렴돼 자동차공업협회는 강남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기존 건물을 보수해 예총회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모든 역사가 필자가 천직이라 생각했던 문공부를 퇴직하고 만들어 낸 일들이라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이유는 한 동네의 구조를 바꾸는 대형 프로젝트가 사실 개인의 절실한 사유(思惟)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환경의 이질감을 뒤로한 채 필자는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그 곳이 아름다워지길 바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예술의 향기가 그 공간에 넘쳐나길 가슴속 깊이 열망했다.

지금도 마로니에공원을 걸을 때면 그 신나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미 나이는 젊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모두가 사랑하는 대학로에 필자의 열정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묻어 있다 생각하며 걷는 그 기분이란.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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