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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낙청 발언 일파만파, 창비와 신경숙이 만났을 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신경숙의 표절 의혹과 관련, 창비의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계간지 ‘역사비평’이 특집 ‘해방70년의 변곡점‘의 하나로 이 사건을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창비와 신경숙이 만났을 때‘란 제목의 글에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소설 표절사건에 이른 창비와 신경숙의 만남과 이후 행보, 특히 90년대 시대적 배경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천 교수는 90년대 한국문학사와 지식인 공론장은 80년대적인 것의 이념적ㆍ제도적 청산이었으며, 백낙청이 상찬한 신경숙의 ’외딴방‘은 바로 그런 변곡점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불안한 여공의 생활을 그린 신경숙의 고백적 장편소설인 ‘외딴방’에 창비와 백낙청은 ”한국문학의 보람“이란 칭송을 보냈고 만해문학상을 수여했다. 당시로선 유일한 여성수상자이자 역대 최연소였다.

천 교수는 창비와 백낙청이 ‘90년대 문화ㆍ문학’과 접속하는데 성공한 점에 주목한다. ”이 성공은 이념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 양자에 걸친다. 창비와 백낙청 개인의 이론가ㆍ사회운동가로서의 권위도 90년대에 더 높아졌다“고 평했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1992년 이론적으로 정초된 모습으로 처음 나타나는데 흥미롭게도 1980년대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대표적인 두가지 이론인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대립을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이런 속에서 문학적ㆍ상업적 결정적 분기점의 하나로 백낙청의 ‘외딴 방’상찬을 꼽았다. 민족문학론의 맹장이자 리얼리즘 이론비평의 대표인 백낙청이 쓴 ‘외딴방론‘을 계기로 민중문학은 급격히 폐기처분되고 ‘그런노동소설’은 불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백낙청의 ’외딴 방‘론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제시하며, 백낙청이 신경숙을 따라 1970~80년대 대다수 여공의 현실과 의식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거나 수정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꼭 가난해서만은 아니고 어떤 뜨거운 열망 때문에 여공이 됐던 존재인 ‘외딴방’의 ‘나’여서 소설이 풍속화의 독창성과 정직성을 확보한다 한다. 우선 이 해석은 가난과 ‘열망’의 관계에 대한 오석”이라는 것
”가까운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증언록“”드물게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란 백낙청의 칭송도 리얼리즘 개념을 쉽게 갖다붙였다고 비판했다.

또 천 교수는 백낙청의 ‘외딴방’ 지나친 칭송의 예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의 비교를 들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문학에 대한 물음의 집요성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의 깊이에서 ‘외딴방’과 견줄 차원에 다다랐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평한 대목이다.

천 교수는 노동과 지성(글쓰기)의 분열을 신경숙만의 방식, 즉 ”여공들을 완전히 대상화하지는 않고 대신 자신의 글쓰기에 자기반영적인 내면성의 기호를 잔뜩 기입하는“ 식으로 표현한 글쓰기에서 1990년대 남성평론가들이 뭔가 새로운 점을 보려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외딴 방’이 대단한 실험적 작품이나 ‘진정한’노동문학으로 받아들여진 1990년대 주류 비평정신의 한계나 궁지, 그리고 백낙청 비평의 모순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며 이런 비평의 태도가 현재 한국 비평문학의 황폐화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천 교수는 창비와 문학동네의 ’교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두 회사는 사업상 이해관계가 잘 맞았는데 그 매개가 신경숙이었다는 것. “예컨대 창비에서 나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애초에 감상성과 통속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비평가들이 ’문학성‘을 보증해주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 교수는 ‘신경숙 표절 사태’를 문학장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본다.
그가 인식하는 현재의 문학장의 위기는 ’창비와 신경숙의 만남‘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본의 논리‘와 취향 외에는 모든 규범이 망가져버린 현재의 상황에서, ’운동으로서의 문학‘과 ’예술로서의 문학‘에 결부된 과거의 판돈을 사용하며 현재나 미래를 횡령하는 세력이 있다”고 천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창비 문동이 문단과 공론장의 공기로서 깊은 성찰을 통해 그 같은 위상을 재인식하고 회복하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한국문학은 더 근본적인 ’신뢰의 위기‘에 빠지고 차가운 냉소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이다.“며, ” 특히 창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인다. ’명예‘와 ’진보‘ 같은 가치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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