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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절한 동성애 러브신…또 다른 배수빈
1958년 동성애자 이야기 담은 연극 ‘프라이드’서 필립役…젠틀남 이미지 내려놓고 ‘고독한 눈빛’으로 금지된 사랑의 애절함 전달
젠틀한 이미지의 배우 배수빈은 당분간 TV 대신 대학로 소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다. 슈트를 차려입은 검사나 재벌2세가 아니라 영국의 동성애자 필립으로 변신한다. 그는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프라이드’를 통해 11월 1일까지 관객들과 직접 만난다.

배수빈은 십여년 전 드라마 ‘주몽’에서 동성애 연기를 선보인 이후 2년간 섭외가 끊긴 적이 있다. 지난 25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동성애자역을 편안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결혼해서 애도 낳았잖아요”라며 웃었다.

“‘주몽’이 끝났을 당시에는 신인이니까 저의 다른 연기를 본 감독들이 없었잖아요. 그럴수도 있었겠다 싶어요. 이후 여러 작품을 하면서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났죠”
배우 배수빈(본명 윤태욱)의 예명은 조해일의 소설 ‘갈 수 없는 나라’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 주인공은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그는 중성적인 느낌의 예명처럼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사용(드라마 ‘주몽’), 순수한 고시생에서 욕망에 눈이 먼 검사로 돌변하는 도훈(드라마‘ 비밀’) 등 다층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소화해왔다. [사진제공=연극열전]

‘주몽’ 이후 배수빈은 ‘동이’, ‘찬란한 유산’, ‘비밀’ 등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26년’을 비롯 최근 ‘협녀’까지 영화도 10편 넘게 출연했다. 2007년 연극 ‘다리퐁 모단걸’ 이후 2~3년 간격으로 연극 무대에도 서고 있다.

“뭔가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무대를 찾아요. 2010년 드라마 ‘동이’가 끝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연극 ‘이상, 12월 12일’에 출연했죠. 올해 출연한 ‘내 마음 반짝반짝’이 조기종영됐어요.(웃음) 무대에 너무 서고 싶다고 허지혜 연극열전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죠. ‘프라이드’를 추천하시길래 대본을 보기도 전에 ‘할께요’라고 했어요”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5년을 오가며 동성애자 필립, 올리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갗이 아닌 마음이 닿는 순간”처럼 감성적인 대사 위주지만 욕설과 적나라한 성(性)적 대사도 적지 않다.

“대놓고 이렇게 욕하는 대사는 이번이 처음이예요. 공연이니까 할 수 있는거죠. 시원해요. 하하. 하지만 1막 마지막에 강렬하고 처절한 러브신이 끝나면 넋이 나가요. 인터미션 때 초코파이를 먹으며 ‘난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망연자실하고 있어요”

1958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시대에 살면서 고통을 겪는다. 반면 2015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밝은 대낮에 공원에서 거리낌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1958년의 필립이나 2015년의 필립이나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필립은 항상 따뜻하고 섬세하죠. 하지만 여성스러움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어요. 올리버와의 케미가 안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배수빈은 1958년의 필립을 연기할 때 올리버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고독한 눈빛으로 관객들에게 울림을 준다.

“필립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기 연민의 감정이 강한 날도 있고, 올리버에 대한 그리움이 더할 때도 있고 공연날마다 감정도 달라져요”

그는 연습기간 두달에 공연기간 석달까지 다섯달 동안 드라마 출연 스케줄은 잡지않았다. 그게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다보면 배터리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아놓은 것 같아요. 계속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죠. ‘프라이드’ 대사에도 나오지만 객석과 무대 사이 ‘공기의 일렁임’ 때문에 연극을 하는 거예요.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이 되게 짜릿해요. 관객들의 호흡이 공기를 통해 느껴져요”

그는 얼마전 연극 ‘홍도’를 비롯 ‘푸르른날에’, ‘벤트’, ‘엠 버터플라이’를 관람하는 등 다른 연극들도 열심히 보러다니고 있다. 2012년 드라마 촬영 때문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 출연하지 못했던 ‘엠 버터플라이’의 르네역도 탐을 냈다. 르네는 20년간 여자인줄 알고 사랑했던 경극 배우가 사실은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통받는 인물이다.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면서 실험을 많이 했어요. 틀에 박힌 인물보다 흔들리는 인물을 좋아해요. 원래 인간은 갈대같으니까요. ‘프라이드’의 실비아가 한 대사처럼 믿었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시기가 오잖아요. 흔들리면서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거니까…. 그런 중간 선상에 있는 인물들을 좋아해요”

올해 나이 서른아홉. 40대를 앞둔 그의 바람은 열정은 신인 시절 그대로지만 더 깊이있고 세련된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열정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조금 부족할 수도 있잖아요.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방법으로 감정을 잘 전달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제 그럴 때가 된 거 같아요. 노하우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으니 앞으로 시청자나 관객들의 마음속에 좀더 깊숙히 침투하고 싶어요”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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