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쉼표] 맨오브라만차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기 위해/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기 위해/감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뮤지컬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 톱10에 드는 ‘맨오브라만차’의 대표곡 ‘임파서블 드림’이다. 지난주 막을 올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2005년 한국 라이선스 초연 이래 7번째 무대다. 브로드웨이 초연으로 따지면 50주년. 여기에 원작 소설의 완간 400주년, 한국어판 출간 100주년까지 더하면 ‘돈키호테’를 기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4세기에 걸쳐 전무후무한 인기를 얻고 있는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일생은 그닥 순탄하지 않았다. 20대 초반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왼팔에 총상을 입었고, 귀국하던 중 해적에게 납치돼 5년 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드리드의 트리니티 탁발수녀원에서 몸값을 지불해 겨우 풀려나 돌아온 그는 생활에 쪼들리며 여러 일을 전전했다. 세금원으로 일하다 불미스런 일에 연루돼 감옥에 수감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1605년 출간한 돈키호테의 인기는 출간 당시에도 상당했다. 세르반테스 생전에만 16판을 찍었을 정도다. 책을 들고 있는 이들이 킬킬거리고 웃고 있다면 볼 것 없이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았다. 돈키호테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콘텐츠 생산의 원천이 되고 있는 건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는 해석의 여지에 있다. 발행 초기에는 코믹 소설로, 프랑스 혁명 이후엔 “사회는 악하고 개인은 옳다”는 윤리의 옹호로, 19세기엔 사회 비판적 시각으로 읽혔다. ‘돈키호테’는 사실 문학과 예술에 더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실을 인식하는 새로운 형식은 뒤마와 마크 트웨인 등에 영향을 끼쳤고 피카소와 작곡가 스트라우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다. 이윤미 기자/meelee@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