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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년 대자연의 숨결…기암괴석 철원을 낳고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다보면 신기한 암석들이 많다. 이 가운데 희귀하고 아름다운 자원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이 관리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지질공원을 찾으면 교과서에서만 보던 화강암, 현무암 등을 직접 보고 만지며 산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화강암 위로 현무암질 용암이 흘러 넓은 평야와 함께 각종 기암괴석이 생겨난 강원도 철원은 대표적인 지질명소다. 군사 요충지 혹은 한탄강 래프팅으로 유명한 철원은 곳곳에 숨은 비경(境)도 간직하고 있다. 

▶자연이 빚은 조각들=철원의 대표적 명소 고석정은 1억년 전에 만들어진 화강암이다. 한탄강 골짜기에 기둥처럼 우뚝 서있는 수려한 바위 위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이 곳에서 수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석정에서 작은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면 돼지코바위,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등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을 볼 수 있다. 래프팅하던 사람들이 잠시 물가에 내려서 쌓아놓은 돌탑들도 눈에 띈다.

화강암 지대지만 군데군데 용암이 흐르면서 생겨난 현무암도 불쑥불쑥 나타난다. 김미숙 지질해설사는 “철원에 있는 현무암은 제주도처럼 화산재가 굳은 것이 아니라 용암이 흐르다 굳어져서 더 무겁다”며 “똑같은 돌이라도 알고나면 새롭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에서는 현무암 맷돌로 커피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가 특산물이다.

고석정에서 조금 떨어진 송대소 연못에 가면 갖가지 모양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굳으면서 생긴 삼각형이나 육각형 기둥 모양의 암석들이다. 연못 주변으로 부채꼴, 연필 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펼쳐져있다.

송대소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직탕폭포가 나온다. 좁은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일반적인 폭포와는 사뭇 다르다. 길이 80m의 폭포에서 3m 높이의 물줄기가 직각으로 떨어져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불린다. 폭포 상부는 현무암이지만 하부는 화강암이다. 침식작용으로 현무암 밑에 깔려 있던 화강암이 드러난 것이다.

직탕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지점이 깎여서 점차 상류 쪽으로 이동하고 있기도 하다. 철원 주민들은 폭포가 점점 뒤로 물러나 북한까지 가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폭포의 위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매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명성산 중턱에 있는 삼부연폭포 역시 자연이 빚은 조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금강산에 가던 도중 이곳에서 진경산수화를 그렸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삼부연폭포의 높이는 20m에 달한다. 웅장한 암석들 사이로 굵은 물줄기가 지그재그로 흐른다. 폭포의 물줄기는 세 번 꺽어진다. 공중에서 보면 연못이 세 개인 것 같다고 해서 ‘삼부연(三釜淵)’ 폭포라고 불린다. 가운데 글자는 가마솥 ‘부(釜)’자다. 세 개의 연못은 각각 노귀탕, 솥탕, 가마탕으로 불린다.

삼부연에는 이무기가 네 마리 살았는데 이중 세 마리만 용이 돼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남은 이무기 한마리가 심술을 부려 가뭄이 들면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 폭포 아래 바위가 움푹 패인 곳은 용의 발자국, 바위에 있는 금은 승천하던 용의 비늘이 긁은 자국이라고 전해져온다.

삼부연폭포를 구성하는 암석은 복운모화강암이다. 복운모화강암은 검은 흑운모와 진주빛의 백운모가 섞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석의 절대연령은 1억7000만년 전으로 측정된다.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철원평야는 약 27만년 전 북한에 있는 오리산에서 용암이 폭발하면서 생겨났다. 현무암질 용암은 최소 11차례 이상 뿜어져 나와 화강암을 덮고 포천, 연천, 파주까지 흘러갔다. 철원평야의 젖줄인 오리산은 ‘어머니 배꼽산’이라고도 불린다.

3만5000㏊에 달하는 철원평야는 소이산 정상에 오르면 한눈에 볼 수 있다. 소이산은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다. 한국전쟁 전후에 미군기지로 쓰이던 곳이었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산책로를 40분 가량 걸으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시원한 조망이 360도로 눈앞에 펼쳐진다.

너른 평야 위에는 낮은 언덕들이 군데군데 솟아있다. 용암이 흘러내릴 때 완전히 덮히지 않고 섬처럼 남아있던 산이나 언덕이다. 지질학적으로는 스텝토(steptoe)라고 한다. 6ㆍ25전쟁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다는 백마고지와 폭격으로 산 윗부분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는 아이스크림고지가 대표적인 스텝토다.

이처럼 용암이 만들어낸 철원평야는 강원도 최대 곡창지대가 됐다. 원래 현무암층은 배수가 잘 돼 수분 유지에 불리하다. 하지만 현무암층 위에 새롭게 퇴적층이 형성돼 철원평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철원은 일교차가 20도에 달할 정도로 커서 곡식이 단단하게 여문다.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영상 40도 가까이 오르는 등 계절별로도 엄청난 일교차를 보인다.

특히 철원에는 공장이 없어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해 농산물의 품질이 우수하다. 철원오대쌀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수확해 전국 쌀값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철원 지역 논의 대부분은 민간인통제선 안쪽에 있다. 농민들은 군부대에 신고하고 민통선 안에 있는 논으로 출퇴근을 해야한다. 야근은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논에 들어가려면 주황색 모자를 쓰고 팻말을 들고가 농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지금은 출입증을 바코드로 찍는다고 한다.

철원오대쌀과 함께 철원 서리태도 유명하다. 동송읍에 있는 우렁골늦서리태두부집에서는 검은두부전, 검은콩국수 등 서리태로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검은 빛깔의 두부는 보기에 낯설지만 고소한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멈춰선 철마=철원은 분단이 되기 전까지만해도 사통팔달의 요지였다. 한반도 지도에서 나진-목포, 신의주-부산을 끝으로 잡고 X자를 그으면 정중앙에 철원이 자리잡고 있다.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철원역은 일제시대에 서울역 다음으로 직원 수(83명)가 많은 역이었다.

하지만 분단이 되면서 철도는 끊기고 철원의 인구도 점점 줄었다.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월정리역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푯말과 함께 녹슨 기차가 쓸쓸하게 남아있다.

철원군에 안보관광을 신청하면 월정리역을 비롯해 평화전망대 등 민간인통제구역 안쪽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제2금융조합 건물터, 얼음창고 건물 등을 통해 과거 흥청거렸던 철원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평화전망대에서는 망원경으로 북한 주민들이 밭 일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육안으로도 북한군 초소는 물론 그 뒤편에 있는 낙타봉과 김일성이 전투를 지휘했다는 고암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년이 흐른 지금 남북 휴전선 주변은 온통 초록색이다. 하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총소리와 나무숲에 걸려있는 ‘지뢰’라는 붉은 표시가 현실을 일깨워준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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