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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네덜란드<세계의 왕실> 독립·저항의 상징 ‘오렌지 왕실’…사치로 권위에 흠집
네덜란드 독립 이끈 나사우 왕가…존경심으로 이어져온 왕실 인기
빌럼3세 이후 123년간 여왕통치…배우자 논란·호화생활 등 구설수
남성 군주 빌럼 2013년 즉위…소탈행보·세공주 국민사랑 회복



네덜란드에는 비록 사문화되긴 했지만, ‘왕실모독죄(lese-majeste)’ 항목이 있다. 1881년에 제정된 이 법으로 왕 또는 왕족을 고의로 모독하면 최고 징역 5년 또는 2만 유로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오라녜-나사우(Oranje-Nassau)’왕가에 대한 국민 인기는 유럽 왕실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다만 이는 현 군주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과거 네덜란드 독립을 이끈 ‘건국의 아버지’ 오라녜공 빌럼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가족이 지난달 10일 네덜란드 남서부 도시 바세나르의 한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막시마 왕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국왕, 둘째 알렉시아, 첫째 아말리아, 셋째 아리안느 공주. [사진제공=네덜란드 왕실 웹사이트]

▶위기 때 빛난 선대 여왕들의 모성 리더십=네덜란드 왕실은 빌럼 3세(1817~1890년) 이후 남계가 끊겼다. 빌럼 3세는 3남을 뒀지만 모두 사망하자, 딸인 빌헬미나(1880~1962)를 왕위 상속녀로 지정했다. 빌헬미나는 10세의 어린 나이로 여왕이 돼 어머니의 섭정을 거쳐, 1898년에 친정을 시작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2013년에 빌럼 알렉산더르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123년간 여왕의 시대가 이어졌다.

58년간 통치한 빌헬미나는 ‘네덜란드의 어머니’로 불리운다. 1, 2차 세계대전, 1933년 세계대공항, 1944~45년 2만2000명이 굶주려 사망한 ‘기근의 겨울(hunger winter)’ 등 위기를 강인한 모습으로 국민과 함께 이겨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침공으로 영국 런던에 임시망명정부를 두고 피신했을 때 빌헬미나는 라디오 방송에서 히틀러를 “인류 최대의 적”이라고 비난하며, 고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여왕은 나치 저항 운동의 상징이었다. 독일군이 여왕의 생일 축하를 금지시켰지만, 본토 지역 곳곳에서 여왕 생일에 애국가를 부르고 여왕의 포스터를 돌렸다는 기록이 있다.

여왕은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 처칠 영국 수상은 그를 “런던 망명정부들 중 진짜 남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종전 뒤에도 여왕은 궁으로 바로 가지 않고, 헤이그 저택에서 8개월을 보냈다.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지방을 돌면서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그의 뒤를 이어 1948년 즉위한 외동딸 율리아나(1909~2004년)도 어머니 못지않은 강인한 여성이었다. 1953년에는 네덜란드에 500여년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이 닥쳐, 2000여명이 숨지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 지역을 방문한 율리아나는 몸소 부츠를 신고 사방이 진흙더미인 곳에서 이재민에게 구호 식량과 옷 등을 나눠줬다. 그 역시 모친처럼 자전거를 타고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배우자 논란에, 사치에 위기 맞은 ‘자전거 왕실’=율리아나의 맏딸로 1980년에 즉위한 베아트릭스(77) 여왕 역시 자전거를 타며 친서민적 행보를 보였지만, 33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여왕은 1966년 독일 외교관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와 결혼했다. 그런데 암스베르크가 나치소년단에 가입한 전력이 드러났다.

왕실 예산이 과다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왕실 권한이 축소된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경기가 닥친 영향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2012년에 오라녜-나사우 왕실 예산은 3100만파운드(563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영국 왕실을 뛰어넘었다. 스페인과 비교해 인구는 3분의 1 수준(1670만명)인데, 왕실 예산은 4배 규모다. 여왕과 아들 내외에게만 모두 710만파운드(129억원)의 혈세가 주어졌다. 국민적 공분이 일자 왕실은 그 해 모잠비크에 있는 호화 여름 별장을 처분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논란은 식지 않았다. 지난해 헤이그 저택 보수에 700만파운드, 임시 집무실 설치에 36만파운드, 하우스텐보스 궁 복구에 2800만파운드 등의 예산안이 올라 와 하원의원들이 발끈했다. 유로존에 긴축 재정 바람이 불고 있는 시기에, 그리스에 있는 왕실 별장의 보안 설치비로 이미 32만3000파운드의 세금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딸바보’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123년만에 남성 군주가 된 맏아들 빌럼 알렉산더르(48) 국왕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배우자 문제로 비판에 시달렸다. 아르헨티나 출신 막시마 왕비의 부친은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각료 출신이다. 다행히 막시마 왕비가 대중매체에서 활달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선보이고, 공주 셋까지 낳으면서 인기를 회복했다.

재위 3년차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소탈한 언행으로 국민의 위화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대관식’이 아닌 ‘즉위식’을 치렀다. 1840년에 만들어진 금 도금된 왕관도 머리에 쓰지 않았다. 베아트릭스 여왕이 양위서에 서명하는 약식만 거쳤을 뿐이다. 그는 빌럼 4세가 될 수도 있었지만 고답적 호칭을 사양했다. 또 언론과 인터뷰할 때도 자신을 “폐하”라고 부르지 말도록 했다.

일상에선 그는 전형적인 딸 바보 아빠다. 그는 슬하에 왕세녀인 첫째 카타리나 아말리아(12), 둘째 알렉시아(10), 셋째 아리안느(8) 공주를 뒀다.

국왕은 첫딸이 태어난 지 2년 뒤인 2005년부터 가족의 일상을 연 중 두차례 각 30분씩만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왕실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쇼핑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언론에 노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이유다. 연예매체 등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밀어붙였다. 이런 미디어 행사는 보통 휴가철에 이뤄진다.

200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아말리아와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AP통신 사진 기자에 의해 전세계에 퍼지자, 2010년에 AP통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긴 일도 있다.

당시 변호인이 법정에서 대독한 왕의 서한에서 국왕은 자신은 망원렌즈 촬영에 익숙하지만, 딸들은 그러한 불유쾌한 경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 미디어 규정이 잘 지켜져 세 공주는 여느 네덜란드 아이들과 똑같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왕실이 서민들과 가까워지면서 ‘군림’의 의미는 옅어지고 있다. 시민들 가운데 왕실에 대한 특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적지않다.

지난해 11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운동가가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과 막시마 왕비를 향해 욕을 하는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힌 뒤 134년된 해묵은 왕실 모독죄가 다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불카심 오르자베리라는 이 흑인 운동가에게 500유로의 벌금형이 내려졌지만, 그는 납부를 거부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암스테르담 왕궁 벽에는 누군가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오르자베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 낙서가 생겼다. 트위터에서도 그 말이 확산됐다. 검찰은 지난 5월에 오르자베리 기소 방침을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소환하지도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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