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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롯데家, ‘시게미쓰’ 對 ‘辛’ 의 싸움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ㆍ성연진ㆍ윤현종 기자] “롯데는 한국 기업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3일 귀국 직후 “롯데는 매출이 95% 한국에서 나오는 한국 기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롯데가의 경영권 다툼이 국적을 둘러싼 여론전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이후 행보도 남달랐다. 그는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단 5분 독대했지만, 곧바로 제2롯데월드 현장 107층을 찾았다. 제2롯데월드 건설을 총괄하는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롯데월드타워는 총괄회장의 창업정신에 따라 롯데가 사명감을 가지고 짓는 곳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며,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완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동빈 회장은 귀국 직후 잇따라 ‘한국‘, ‘대한민국’을 강조한 것은 일본에서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성장한 ‘반쪽 한국 기업’이 가져올 논란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왼쪽부터)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韓도 日도 아닌 ‘반쪽 롯데’=신동빈 회장이 “한국에서 롯데의 매출 95%가 나온다”고 말했을 정도로, 롯데그룹의 무게 중심이 한국으로 넘어온 지는 오래다. 일본 롯데가 식품에 집중한 반면, 한국 롯데가 식품에서 유통, 관광,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한국 롯데의 계열사는 75개사로 일본 롯데 17개사의 4배 많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일본 롯데가 한국의 15% 수준에 그친다고 알려져있다. 롯데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국내에 17만명, 해외 6만명인 반면, 일본롯데 종업원은 2013년 기준으로 약 4500명에 불과하다.

국내 여론이 등 돌린 것은 이 때문이다. 롯데가의 경영 다툼으로 복잡한 지배구조가 드러나고 이들의 지주사가 사실상 일본 롯데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이중국적으로 알려져있지만, 한국 주민등록번호는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어머니와 부인이 일본인인 데다가 어투나 행동방식이 일본에 가깝기 때문에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보수적 재계에서 그를 ‘완전한 한국인’이라 보는 이는 없다.

실은 이 같은 논란은 과거 롯데가 일본에서 성장할 당시, 일본에서도 있었다. 일본 역시 ‘반쪽 일본기업’이란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던 셈이다. 일본 롯데가 1957년 컬러 TV 방송 시작과 동시에 가요프로그램광고를 모조리 사서 껌 광고에 나서자, 판껌 시장에서1위이던 일본 기업 하리스가 경쟁에 밀리게 됐다. 그러자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인(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추잉껌 업계를 넘겨준다” “돈 벌어 모두 한국에 보낸다”는 소문이 번졌다.

경영일선에서 배제되는 듯 했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이 반년만에 다시 ‘원 톱’을 노리게 된 것도 한국 롯데 역할이 커지면서 일본 내 ‘경계론’이 생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들은 한 때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던 롯데가 사실상 ‘한국 기업’으로 넘어간 것을 경계해왔다. 때문에 일본으로 롯데의 무게중심을 가져오고픈 세력들이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게미쓰의 일본식 경영 VS 신의 미국식 경영=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이 반기를 들면서 경영권 다툼의 불씨가 붙었지만, 업계는 이 갈등은 결국 아버지 신격호와 차남 신동빈의 부자(父子) 갈등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정반대의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식, 신 회장은 서구식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1988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세계 4위 부호로 꼽혔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그의 자산 가치는 80억달러에 달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배로 오른 데 따른 것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포브스의 설명이다. 포브스는 그에 대해 ‘제과 업자’가 아닌 ‘부동산 개발업자’라고 소개했다. 실제 신 회장의 당시 별명은 ‘600만평의 사나이’ 였다. 이유는 일본 동경 일대와 명동, 부산 등 요지에만 600만평의 땅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식 보수적 투자방식을 견지했다. 부동산 투자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껌을 팔아 일군 기업’ 이기 때문에 현금을 아끼고큰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세간에 떠도는 말만은 아니었다.

실제 신격호 총괄회장은 1983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롯데 껌 한통의 소비자가를 정확히 답했다. 회장이 껌 한 통 가격도 알고 있는 데에 기자가 놀라자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껌은 23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 1만5천 종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 1만5천 가지 제품의 특성과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집무실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란 문구가 걸려있다. 이 문구는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을 멀리하고 실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반면 아들은 달랐다. 신동빈 회장은 미국 컬럼비아 경영전문대학원(MBA)를 나와 1981년 노무라 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입사한 당시 노무라는 엔고를 등에 업고 국제화를 시작했다. 엔화 가치가 뛴 일본인들이 해외의 주식과 채권, 부동산 쇼핑에 나섰고, 노무라는 이에 첨병 역할을 하면서 유럽 채권 발행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호주, 스위스, 싱가포르 등에서 상업은행을 인수했다. 신 회장은 노무라가 국제화 될 당시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꼭 회사를 팔아야 되겠나?” 2006년 롯데쇼핑 상장을 위해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에게 보고하자, 신 총괄회장의 반응은 이랬다. 아무리 큰 기업도 상장하지 않으면 기업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는 일본법에 익숙한 그는, 상장이 회사 일부를 매각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당시 롯데쇼핑은 현금도 넉넉했기 때문에 아버지 총괄회장으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 공개를 통해 현금을 확보, 투자해 회사를 키워나가는 글로벌 방식에 익숙한 신동빈 회장은 결국 상장을 밀어붙였다. 런던과 서울에서의 동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3조5000억원의 자금은 롯데의 활발한 인수합병의 디딤돌이 됐다.

최근까지도 신동빈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껴선 안 된다”면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롯데는 KT 렌탈을 비롯해 러시아ㆍ인도네시아 복합 쇼핑몰 인수 등에 쓰일 기업투자자금으로 사상 최대규모인 7조5000억원을 책정했다.

한편,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5분 회동’으로 갈등이 정점에 오른 3일 롯데그룹 주요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하루만에 시가총액 1조7400억원이 증발했다.
롯데케미칼, 롯데칠성, 롯데쇼핑, 롯데손해보험, 롯데하이마트,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 그룹내 계열사 7개의 시가총액은 약 23조8500억원으로 하루만에 2조 가까운 투자금이 날아간 것이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이 집안 싸움으로, 그간 롯데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투자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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