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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T 수석무용수 서희 “서른 전에 장학재단 만드는 것이 꿈”
[헤럴드경제(평창)=신수정 기자]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서희는 지난 1일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처음으로 양말을 신고 무대에 섰다. 서희는 검은 셔츠와 검은 타이즈에 초록색 양말을 신고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에 맞춰 춤을 췄다. 힙합 안무가 출신 그레고리 돌바시안이 이번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위해 안무한 작품이다. 힙합이 가미된 동작이었지만 서희의 우아한 몸짓은 클래식 발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날 서희는 프랑스 출신 남자 무용수 알렉산드르 암무디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볼레로’는 같은 멜로디가 15분 동안 반복되는 음악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클래식 음악과 힙합 안무가 어우러진 새로운 ‘볼레로’에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서희는 “굉장한 도전을 했고 할만큼 했으니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음악은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볼레로’로 정해주셨어요. 대신 안무가와 남자 무용수는 저한테 선택하라고 하셨죠. 매일매일 최선은 다하지만 항상 최고일 수는 없잖아요. 우리끼리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걸로 제가 또다른 무용수가 돼가는 것 같아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볼레로’ 공연 직전 무대에 올라 “‘볼레로’는 이미 유명한 발레 작품이 있어서 새롭게 안무한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라며 “클레식 발레가 화려한 아름다움이라면 이번 ‘볼레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서희는 바닥에 앉아 무릎을 꿇거나, 무릎을 모으고 앉거나, 책상다리를 하는 등 현대무용과 같은 동작들을 선보였다. 두손을 마주 잡고 올렸다 내리는 등 몇몇 동작이 반복됐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안무가는 그날 필(fee)에 따라가라고 했어요. 안무가는 자신이 스텝을 짜주지만 저보고 만들어가면 된다고 했죠. 이 작품 하다보면 되게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발 대신 양말을 신은 것은 미끄러지는 동작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털실로 두툼하게 짠 수제 양말이다.

클래식 발레의 경우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지만, 이번 공연은 반주도 첼로 네대와 타악기 한대로 평소와 달리 단출했다.

“예전에는 음악을 박자로만 들었어요. 예를들어 이 박자에는 이 동작 이런식으로 머릿속에 입력이 됐었죠. 뉴욕에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가끔 발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요.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발레 음악을 들으니까 너무 다르더라고요.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운 소리도 아름답지만 이제는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도 들려요. 이번에 리허설할 때도 악기 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듣기만 한 적도 있어요”‘

서희는 3년전부터 구삼열 대표와 정명화 예술감독으로부터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ABT의 수석무용수가 된 후 개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서희는 ABT의 이번 봄시즌 ‘지젤’,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등에서 첫날 공연과 마지막날 공연을 도맡아왔다. ABT의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하는 등 간판 무용수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대관령국제음악제는 ABT 전체의 여름휴가 기간과 맞아떨어져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올해 ABT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나 줄리 켄트의 은퇴 등도 있었지만 부상을 당한 무용수도 많았어요. 얼마전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과 함께 ‘라 바야데르’에 출연한 것도 폴리나 세미오노바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예요. 보통 수석무용수는 일주일에 공연을 한두번하는데 전 세번씩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 수석무용수로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

서희는 바쁜 와중에 ABT 소속 무용수 5명과 함께 ‘인텐시오’라는 프로젝트 그룹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 보스턴 공연에 이어 향후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에서 투어공연할 예정이다.

“발레단 스케줄때문에 일요일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일요일도 없었죠. 힘들었지만 다들 ‘새로운 춤을 춰보자’는 생각에 뭉치게 됐어요. ABT가 상주하는 링컨센터는 4000석이예요. 링컨센터에서 100여명의 무용수와 함께 공연할 때보다 ‘인텐시오’ 활동을 할 때 압박(pressure)이 덜한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인텐시오’ 외에도 벌여놓은 일이 있다. 한국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제가 가진 네트워크와 재능있는 한국 무용수들을 연결해주고 싶어요. 후원금은 주로 미국에서 오게 될 것 같은데 세금 문제가 걸려있어서 그걸 조정하는 단계예요. 제가 현역에 있고 네트워크가 가장 많을 때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올해 제가 스물아홉인데 내년에 서른 되기 전까지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싶어요”

서희는 선화예술중학교 재학시절 미국 워싱턴의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2003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5년 ABT에 입단해 수습단원, 군무,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에 올랐다.

“전 발레가 너무 좋은 이유가 시(詩) 같아서예요. 예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춤을 출 때 ‘사실 너(로미오)를 좋아하지만 집안에서 반대가 심하고…’ 이런 복잡한 감정을 춤으로 다 말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점점 동작이 열가지에서 다섯가지, 두가지로 간결해지고 있어요. 그럴 때는 저 스스로 소름이 돋아요. ABT에서 좋은 무용수들을 보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런저런 말이 많지 않아도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딱 느낄 수 있도록 시처럼 함축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ssj@heraldcorp.com

[사진제공=대관령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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