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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필수]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나는 계예요, 계”

처음엔 ‘개’라고 하는 줄 알았다. 반문하니 돌아온 답변. “을, 병, 정 지나 저 아래 계라니까요. 을은 상전이지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10간(干)의 맨 아래 ‘계’. 갑을관계에 질린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자학개그를 한다.

엄석대(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인물)는 갑이다. 작은 세계 ‘교실’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른다. 급우들은 을이다. 엄석대에게 굴복하고, 기생한다. 교실은 겉으로는 멀쩡히 돌아가나, 속으로 썩는다. 엄석대의 결말은 물론 새드엔딩(sad ending)이다.

‘권력(權力)’. 보통 이렇게들 많이 쓴다. ‘절대권력’, ‘권력무상’ 등. 최근에 조금 다른 조어(造語)들이 부각되고, 들린다. ‘문학권력’, ‘패션권력’, ‘미술권력’ 등.

‘문학권력’은 작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으로 다시 부각됐다. 1999년 이후 몇 년간 이어졌던 문학권력 논쟁이 15년여를 지나 재점화됐다. 그 한 편에 문학동네, 창비(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출판사 ‘빅3’가 있다. 이들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야 주요 작가로 우뚝 서고, 이 작가들은 다시 이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는 폐쇄고리가 만들어졌다. 어느덧 권력이 됐다. 이들은 반론한다. “이 정도 매출(2014년 문학동네 256억원, 창작과비평 223억원, 문학과지성사 40억원)이 권력이라구요?” 궁색하다. 몸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를 얘기하는 거다. 저울추는 여전히 한 쪽으로 기울어 있고, 균형을 맞춰 보자는 논의만 무성하다.

패션 쪽에서도 권력 얘기가 나왔다. 정구호 디자이너를 총감독으로 맞이한 서울패션위크(서울시 산하 서울디자인재단 주관)가 운영 방식을 바꾸면서다. 디자이너들의 참가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참가비를 올렸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신(新)권력, 구(舊)권력 얘기가 불거졌다. 세대 교체 과정에서의 시끄러움이라는. 보이콧은 풀렸다. 천만다행이다. 뒤에서만 얘기되지만, 분명 ‘미술권력’도 있다. 시장이 크지 않으니, 일부 선발주자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등이 ‘빅3’다. 경매 쪽은 서울옥션과 K옥션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제 꼭지점에 다다른 ‘단색화 열풍’도 갤러리가 만들어낸 신드롬임을 미술인들은 공공연히 말한다. 누구는 “시장왜곡”이라고 비난하고, 누구는 “시장선도”라고 옹호한다.

앞서 ‘관피아’(관료), ‘모피아’(기획재정부), ‘해피아’(해양수산부), ‘건피아’(국토교통부), ‘정피아’(정치인), ‘언피아’(언론) 등 각종 마피아가 온 나라를 휘저었다. 이제 좀더 직관적인 단어 ‘○○권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문화계 쪽에서 이러니, 더 시끄럽다.

어느 조직이든 10명중 2명은 성과를 내고, 도드라진다는 ‘8대2 법칙’은 신빙성이 높다. 문제는 그 2명이 조직 전체를 감싸안을 것인가, 아니면 폐쇄고리 안에서 끼리끼리 독주 내지 안주할 것인가이다.

폐쇄적 권력은 절대적 권력을 향하기 마련이다. 영국 역사가 존 에머릭 액튼은 일찍이 경종을 울렸다. “모든 권력은 붕괴하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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