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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민낯-승정원일기 22] 냉수로 벌을 내리리라
임금과 신하가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1792년 3월 2일 정조는 승지와 응제(應製)에 합격한 성균관 유생들이 입시했을 때, 궁전 뜰에 있는 유생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린다.

“옛사람이 술에 취하게 해서 그 덕을 살핀다고 했으니, 오늘은 덕을 볼 기회이다. 너희는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하고 각각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주량껏 다 마시라. 우부승지는 틀림없이 술을 많이 따라봤을 것이니 술잔을 돌리는 일은 우부승지가 담당하라.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 마시게 하되 다들 흠뻑 취하게 하라. 만약 고르지 않거나 흡족하지 않은 자가 있으면 우부승지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단, 벌로 술을 주면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꼴이니 냉수를 벌로 내릴 것이다.”

술을 벌로 내리면 좋아할 것이니, 술 대신 냉수를 벌로 내리라는 처분에서 정조의 유머러스함을 볼 수 있다. 임금의 명이 내리자, 우부승지 신기가 차례로 술을 돌렸다. 정조가 여러 차례 술을 권하고, 이 술을 다 마신 오태증은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를 본 서영보가 오태증을 잠시 물러나게 할 것을 청하자 정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취해서 눕는다고 해서 문제될 게 뭐 있겠는가. 그냥 놔두라. 숙묘조 때에 고 판서 오도일은 경연을 담당한 신하로서 선왕의 후한 대우를 받았다. 그가 어전에서 내린 술을 다 마시고 취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일이 있는데,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온다. 지금 그의 후손이 또다시 이 당에서 취해 누웠으니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조는 왜 위의를 잃을 정도가 되도록 술을 강권하였을까? 술에 취하게 해서 그 덕을 살피고자 한 것일까?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신하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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