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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풍납 토성’은 백제왕성인가?”…학자들 열띤 논쟁 벌여

풍납 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펼쳤다.

13일 오후 서울프레스센터 19층에서는 ‘서울 풍납 토성 백제왕성 심포지엄’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충남대 박순발 고고학과 교수는 풍납 토성의 한성백제 왕성론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박순발 교수는 “풍납 토성에 대한 첫 발굴조사가 1961년 이뤄진 이후 지속적인 발굴 작업 결과 풍납 토성이 백제 한성기(漢城期)의 도성이었다는데 학계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며 “풍납 토성은 인접한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기 도읍 기간 중 도성을 구성하던 성 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1대왕이던 개로왕(재위 455-475) 21년 고구려에 의한 한성 함락 사실을 전하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해당 기사에서 당시 백제 도성을 구성하고 있는 2개의 성에 대해 각각 ‘북성- 남성’또는 ‘대성-왕성’이 짝을 이루고 있어 풍납 토성은 북성(대성) 몽촌토성은 남성(왕성)으로 부르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평범한 유적지에 불과한 풍납 토성이 무리하게 백제왕성으로 비화했다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장은 풍납토성이 백제의 평범한 성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유적 중 왕성 규모에 맞는 주춧돌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풍납 토성의 우진육각형(찌그러진 형태의 육각형 구조) 집터 구조 자체가 왕성에 맞지 않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소장은 또 ▷고구려 장안성, 백제 웅비성 등 수백만평 규모의 왕성과 달리 20만평 규모의 풍납 토성은 왕성이라고는 불리기조차 초라 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 ▷동아시아권 왕성에서 발견되는 격자형 도시계획 구조가 확인되지 않는 점 ▷홍수 범람지역에 도성을 세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풍납 토성이 백제 왕성이었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풍납 토성은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이 대세론으로 굳으면서 주민들이 수 십년간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왔으며 이주비용 문제 등으로 문화재관리청,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다.
이슈팀 이슈팀기자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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