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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처펀드 방어막’ 만든 벨기에의 교훈
여기 한 무리의 대머리 독수리(Vulture)가 있다. 그들은 먹이를 가리지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짐승의 썩은 고기를 탐하는 것을 넘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충분한 상처입은 동물의 숨통도 기어이 끊어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고기맛을 보기 시작한 대머리 독수리들은 이제 한 마을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강한 소나 양까지도 노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오랜 시간 대머리 독수리가 들판에서 저질러 온 악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다.

‘국가대표’ 기업인 삼성이 대머리 독수리의 이름을 딴 ‘벌처펀드’의 대명사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요즘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 다른 쪽에서는 벨기에 정부가 벌처펀드의 수익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8일 AFP 등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벨기에 정부는 최근 벌처펀드가 한 국가의 채무불이행 위기에서 싸게 매입한 국채 등 채권을 되팔 때 매각가격을 제한하기로 했다. 벨기에의 주요 정당들은 여야를 넘어 이 법에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벨기에는 아르헨티나의 13억달러 규모 채무상환을 둘러싸고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계열사 NML 캐피털 등과 지난 10여 년간 갖은 마찰을 빚어오다 이런 결정을 내렸다. 썩은 고기를 먹고 자라난 ‘탐욕의 사냥꾼’이 활개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특히 벨기에는 거대 결제기관인 ‘유로클리어’가 자리하고 있어 이 법의 영향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이제 벨기에 법원으로부터 벌처펀드로 규정당한 외국계 헤지펀드는 그들이 사들인 채권을 되팔 때 액면가가 아닌 할인가격만을 받게 된다.

중요한 점은 아르헨티나와 벨기에를 옥죄어온 ‘엘리엇 군단’의 행태가 최근 삼성을 향한 공격과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이다.

엘리엇 군단은 2000년대 가격이 폭락한 아르헨티나 국채 4억달러어치를 헐값(4800만달러)에 매집, 이후 10년간의 소송 끝에 13억3000만달러(이자포함)라는 거액을 챙겼다.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위기설의 원인으로 엘리엇 군단이 지목되는 이유다.

그들이 삼성에 요구하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이 진행 중인 미래 사업의 성과나 사업구조 효율화에는 관심이 없다. 온통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주식을 비롯한 현물을 배당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중간배당을 하라는 주장뿐이다.

다행히 국내 정치권에서도 벨기에처럼 벌처펀드를 향한 제재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우리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저해하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법안에 대해 “일부 선의의 해외투자자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법 조항을 구체화하고 세부 시행령을 마련하기 전부터 겁을 집어먹는 분위기다. 우리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방패가 시급한 이 시점에서도 말이다.

대머리 독수리의 만행을 보고서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 마을의 ‘기둥’을 잃게 된 마을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와 벨기에 등을 향한 엘리엇 군단의 만행을 수차례나 봐 왔다.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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