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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패션을 만나다 ③] 정구호가 떴다, 패션업계가 들떴다

-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패션위크 자생력 키우는 데 올인”

- 디자이너 정성평가 강화…참가비용 높이고 서류심사도 까다롭게

- 행사 전문화…일반 방문객들에게도 ‘즐길거리’ 제공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디자이너 정구호(53). 그를 위해 없던 자리 두 개가 생겼다. 하나는 서울패션위크에, 하나는 휠라코리아(대표 윤윤수)에.

지난 5월 20일 정구호 디자이너가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에 위촉됐다. 그리고 일주일 뒤, 휠라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겸 부사장직을 맡게 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

2013년 제일모직을 떠난 이후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에 대해 궁금해했다. 무엇보다도 브랜드 ‘구호’를 제일모직에 남겨 놓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의 차기 행보에 촉각이 쏠린 상태였다.

그는 패션을 넘어 문화예술 분야 전반으로 크리에이티브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영화 의상, 무용 연출, 기업 디자인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했다.

서울패션위크와 휠라의 디렉터가 된 지금도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진행하고 있다. 먼저 새로 들어설 롯데호텔의 비주얼 컨설팅을 맡고 있으면서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영화 미술감독 제의를 받고 타진 중이다. 올해 연말에는 순수예술 장르로 개인전도 열 계획이다.

사실 그동안 패션업계 좌장 역할을 해온 이상봉(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 디자이너가 ‘열정페이’ 논란 등으로 입지가 축소된 상황에서 차세대 좌장 격으로 그를 꼽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시기에 정구호의 등장은 업계를 흥분 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서울패션위크와 휠라코리아가 무척이나 고무돼 있다. 특히 휠라코리아의 경우 전 라인의 디자이너들이 그를 중심으로 수렴되는 조직 개편이 이뤄진 상태다.

27일 금요일 오후, 정구호 감독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으로서의 과제와 방향성을 풀어냈다. 낮고 부드러운 말투로. 미리 짜놓은 대본을 읽는 것이 아닌, 옳다고 믿는 것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논리정연하게. 박내선 서울디자인재단 패션팀장이 동석했다. 

인터뷰 전, 정 감독으로부터 사진 촬영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사전 청탁(?)이 들어왔다. “잘 생긴 남자들이 꼭 사진 안 찍으려고 하더라” 했더니 “사진만 찍으면 이상하게 나온다. 실물은 훨씬 괜찮은데”라며 웃는다.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서울패션위크의 문제에 대해 먼저 말해달라.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다. 이런 시기에는 트렌드에 밀접한 산업이 제일 불안하다. 패션이 그렇다.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디자인 경쟁력’이다. 그동안 서울패션위크(서울컬렉션 기준)에 참가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심사 기준은 정량 평가가 70%, 정성 평가가 30%였다. 비즈니스를 잘 했는가, 즉 매출이 높은가를 놓고 디자이너를 평가한 것이다.

▶앞으로 디자이너 선정 기준이 달라지나.

-정량 40%, 정성 60%로 비중이 확 바뀐다. 디자인, 창의성, 독창성에 포커스를 맞출 예정이다. 나를 포함, 10명의 평가단을 구성한다. 해외 유명 패션 전문지의 에디터, 바이어, 아카데미 관련 인사 3명의 해외 평가단과 함께, 비슷한 구성으로 국내 평가단을 꾸린다. 이들의 전문성은 내가 자신한다. 평가단은 참여 디자이너 발표 때 공개할 예정이다.

▶정성 평가에 비중을 둔 이유는.

-매출을 중심으로 한 정량평가 70%는 패션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이 잡아놓은 기준이다. 재단이 이미 장사를 잘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왜 후원해야 하는가. 그 분들은 세금을 더 내는 게 맞다. 디자인 감각이나 창의성, 가능성을 충분히 갖췄지만 아직까지 발전을 못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부스팅(Boosting)해서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패션위크 주최와 관련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측과 마찰도 있는 것으로 안다. (연합회 측은 지난 패션위크 이후 행사 주관에서 빠졌다며 항의하는 자료를 낸 바 있다)

-행사가 재단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공동 주최였고, 이후 공동 주관이 됐다. 그런데 패션위크는 엄연히 서울시의 예산을 받아서 서울디자인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다. 연합회는 후원금을 받고 참여하는 입장이다. 주최와 주관의 명확한 기준에 대한 시의 지적이 있었다.

▶관이 아닌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원래 패션위크라는게 개인들의 영리 목적으로 이뤄지는 행사다. 디자이너들은 결국 본인의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이 행사에 참여하는 거다. 전세계 어느 컬렉션도 관이 주도하지 않는다. 민간 주도 하에 움직인다. 해외 패션위크는 자립성 있는 단체가 행사를 주최하고 공동 마케팅 개념으로 협찬금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 패션계는 아직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 현재로썬 서울패션위크가 공동 마케팅으로 협찬하고 싶을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도 아니다. 그래서 관 예산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이 계속 주도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보는건가.

-디자인재단이 (서울시와는 별개로) 서울패션위크를 독립적인 행사로 계속 가져갈 수도 있고, 서울패션위크 자체가 하나의 독립 단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생력이 중요하다. 디자인재단이 주체적으로 이끌면서 마케터블(Marketable)한 행사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행사로 만들어서 협찬도 끌어내고 (예산) 자립도도 높이겠다는 목표다. (박내선 팀장은 “1년에 몇십억씩 예산이 들어가는 서울패션위크가 실질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언제든지 독립시키고 싶은 것이 정 감독의 생각이자 박원순 시장의 생각”이라고 설명을 보탰다)

▶매력적인 서울패션위크를 만들기 위해 달라지는 것은.

-일단 행사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기준을 높였다. 행사 참가비도 높였고 서류전형도 복잡하게 했다. 그동안 참가비는 실제 비용의 10분의 1 수준(250만원) 이었다. 제대로 쇼를 하는데 대관료만 수억원이 들어간다. 가을 컬렉션부터는 실비의 3분의 1 수준 정도로 올렸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는 만큼 디자이너도 본인 몫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그래야 이 행사를 더 전문화시킬 수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왜 우리를 놓고 장사하냐며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원래 장사라는 건 이윤을 남기는 것 아닌가. 패션위크를 끌어간다는 게 재단 입장에서는 손해나는 장사다.

▶서울컬렉션 외에 신진디자이너들 위주의 제너레이션넥스트 무대는 어떻게 달라지나.

-현재까지는 DDP 소형 무대에서 쇼 위주의 행사를 진행했다. 내년부터는 ‘트레이드 쇼(Trade show)’로 만들 계획이다. 사실 이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거래다. 단순히 쇼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ㆍ외 바이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쇼도 보여주면서 계약도 이뤄질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DDP 외부에서 개최될 수도 있다.

▶패션위크 때마다 관람석 논란이 반복되는데.

-패션 전문 언론과 바이어 위주로 좌석을 축소한다. 패션과 관계없는 공기관에 표를 뿌린다던지 하던 관행도 없앨 예정이다.

▶행사장을 찾는 일반인들은 정작 즐길거리가 없다.

-DDP 내에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 부스를 마련해 행사장을 찾는 일반 방문객들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디자이너 정구호는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직을 두 번 거절 후 승낙했다. 잘해도 욕 먹고 못해도 욕 먹는 자리이기 때문. 그동안 부띠크 디자이너로 출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까지 “운 좋게도” 승승장구 해 왔으니, 이제 사회로부터 받은 기회를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큰 짐을 어깨에 졌다.

서울패션위크 참가 디자이너들에 대한 심사는 온라인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재단은 현재 디자이너들로부터 국문과 영문으로 된 서류를 받고 있다. 디자이너 경력은 물론 디자이너에 대한 국내ㆍ외 주요 언론 보도 등도 첨부 자료에 포함된다. 정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밝혔듯, K-패션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또 한편으로는 해외 패션 관계자들이 국내 디자이너 정보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창구가 일원화되면 그동안 해외 패션박람회 같은 행사에 인맥에 기반한 몇몇 디자이너들만 반복적으로 이름을 올렸던 관행에서 탈피, 진짜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팀장은 “응원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 디자이너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도 했다고. 전문화, 조직화 노력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올해 서울패션위크에 투입된 시 예산은 27억원이다. 이 돈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으로 쪼개 쓴다. 정 감독은 최소한 50억원은 돼야 행사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예산 유치에 팔을 걷어부쳤다. 그리고 취임 한달여만에 10억원을 가져 오는데 성공했다. 국내 한 기업이 정구호라는 이름 석자만 믿고 스폰서를 자처했다. 이는 그의 이름에 거는 돈이면서 동시에 그가 이끌어갈 K-패션의 미래에 거는 ‘희망 베팅’이다.

‘2016 FW 서울패션위크’가 10월 16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다. 넉달이 채 남지 않았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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