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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와 결혼한 여자
-원로조각가 김윤신 화업 60년, 고국서 대규모 회고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결혼이란 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눈 뜨면 작업이었죠. 러브스토리요? 다른 데 눈 돌릴 시간이 없었어요.”

원로 조각가 김윤신(80)에게 조르듯 물었다. 정말 흔한 러브스토리 하나 없었냐고. 그것도 정열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산 시간이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많은 그녀이기에, 잊지 못할 추억의 남자 하나 쯤은 있지 않았겠느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끝까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김윤신은 한국 여성 조각가 1세대다. 강원도 원산 출신으로 홍익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마쳤다. 귀국 후 1974년 조각가 김정숙, 윤영자 등과 함께 ‘한국여류조각가협회’를 발족시켰다.

김윤신은 상명대 조소학과 교수를 맡으며 중견 작가로 이름을 떨치던 중 돌연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그리고 현재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면서 작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훗날 내가 누울 묫자리까지 다 봐 놨다”고 할 정도로 그는 이미 남미 사람이 돼 버렸다. 

分二分一No507, 86x35x72㎝, Algarrobo, 1994
祈願,二 52x32x33㎝, 나무 종류 미상, 2014
피안三, 80x45x35, Algarrobo b, 2014
조각가 김윤신

그녀를 사로잡은 건 나무였다. 조각에 필요한 재료인 팔로산토, 알가로보, 라파초 등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팜파스가 선물한 원시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녀를 붙잡았다.

1983년 12월 5일.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상명대 조소과 교수시절, 조카를 보기 위해 남미로 여행을 떠났던 그 날을. 아르헨티나의 조각 재료에 매료된 김윤신은 그곳에 머물며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아르헨티나 시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시 개최 승인을 받아냈다.

현지에서 곧바로 작업이 이뤄졌다. 길거리 모든 곳이 그녀의 작업실이었다. 그렇게 두 달. 전시는 성황을 이뤘고 현지에서 전시 요청이 쇄도했다. 방학은 끝났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교수직을 벗어 던지고 전업 작가로 그곳에 눌러앉아 버렸다. 학교는 3년 가까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산수(傘壽)에 접어든 작가는 지금도 매일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미술관 아틀리에로 출근한다. 육중한 목재를 손수 옮기고 다양한 공구로 조각하는 등 나무와 씨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월이 작가를 단단하게 만들었듯, 조각의 재료 역시 오닉스, 콰르츠 아주르 등 돌과 같이 더욱 단단한 것들로 확장시키고 있다.

김윤신의 화업 60년을 돌아볼 수 있는 개인전이 한원미술관(서초구 남부순환로)에서 열렸다. 조각, 설치 등 입체 작품 뿐만 아니라 평면 작품까지 총 70여점을 볼 수 있다. 7월 8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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