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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 사태’가 더 서러운 비정규직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 서울 목동의 한 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박민주(가명ㆍ여ㆍ41) 씨는 6월 ‘반토막 난’ 월급을 받게 생겼다. 메르스 확산으로 오는 13일까지 학원이 휴원에 들어간 것이다. 휴원은 2주째 지속되고 있다. 전임강사와 달리 수업한 만큼만 돈을 받는 비정규직 시간강사 박씨는 갑자기 몰아친 메르스 폭풍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이 됐다.
메르스 감염 예방이나 생계지원 대책이 정규직 근로자에 집중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비정규직 청원경찰이 마스크를 쓴채 근무하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 여파로 곳곳에서 비정규직의 설움이 드러나고 있다. 메르스 감염 예방이나 생계지원 대책이 정규직 근로자에 집중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내몰린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과 달리 지난 2일까지 공항공사측으로부터 메르스 대응에 대한 아무런 지침도 받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인천공항공사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자 공항공사는 뒤늦게 소속 비정규직 6000여 명에게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지급했다.

하지만 식당ㆍ면세점ㆍ항공사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 3만4000여명은 그 마저도 받지 못했다. 공항공사가 직접 관리하지 않는 만큼 해당 하청업체에 메르스 예방 수칙 준수를 권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공사측 설명이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 항상 감염 우려에 노출돼 있는 병원, 은행 등에서 일하는 청원경찰이나 청소노동자 등도 감염 방지 대책에서 배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다 감염자와 접촉해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92번 환자는 병원으로부터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지급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 감염 예방이나 생계지원 대책이 정규직 근로자에 집중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비정규직 청원경찰이 마스크를 쓴채 근무하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양치상 의료연대노조 조직국장은 “현재 대부분 병원은 간접고용된 비정규직에게 ‘확진자가 해당 병원에 와 있는지, 의심환자를 발견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의 교육을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고, 보호장비 제공이 안 되는 곳도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가격리 대상이 되면 당장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도 비정규직들은 모른 척 일터에 나가야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조섞인 말까지 나돈다.

신철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자신이 격리돼 일에서 빠지면 일손이 부족해지니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불이익이 없도록 하청업체들에 공문을 보내는 등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은 사회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정규직이 더 고통받는 차별적인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같은 직장에 일하는 근로자에 대해 전염병에 대한 대책에 차별을 두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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