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온산, 밤꽃 향으로 가득하더니 모처럼 청량한 비에 밤꽃들이 모두 땅으로 떨어졌다. 빗물에 쓸려, 남아 있는 온기를 나누려는지 저희끼리 이마를 맞대고 다음 삶을 소망하며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다. 어떤 것은 먼저 떨어졌는지, 색이 더 바라져 초췌한 모습이 땅을 더 닮은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이들은 땅 일부분이 되리라. 그리고 자신이 떠났던 그 자리를 자양해서, 다음 해 6월 온산에 더 멋진 눈부신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노래할 것이다. 그래서 밤꽃에 꽃말을 붙인다면 ‘다음 삶을 기다리는 눈부신 그리움’이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가는 게 인간다운 삶인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너무나 싫증 난 질문이기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주어진 운명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가?

요즘 우리들의 일상은 참으로 바쁘고 고단하다. 모든 게 경쟁구도이고, 모든 게 물질적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관계나 자신의 내밀한 정서 또한 철저히 물화의 구조에 예속되어 있다. 상식과 인정이 허용되지 않고 철저히 물화된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병리적인 자화상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질적 예속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를 단지 자연의 물리적(질료적) 조건으로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그렇다면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특히 건강을 잃었을 때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비로소 삶의 가장 소중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경우가 많다.

최근 웰빙, 죽음학. 생사학. 또는 사생학이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와 관계없이 풍요로운 물질적 수혜와 복지에 초점이 맞추어 실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물질적 수혜와 서비스 이전에, 인간의 특성이 물질을 초월하는 데 있다는 인간학적 통찰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일상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아, 다소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웰빙 이며 죽음학이 지향하는 목표일 것이다.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와 생명의 의미, 만남의 의미, 관계의 의미를 생각하며, 무엇이 진정 참다운 자신의 모습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의 환경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실존적인 문제를 의학의 주제와 범주로 삼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진정한 건강은 잃어버린 건강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보다 질병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질병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 건강한 삶일 수도 있다.

현대 의료는 질병과 병리학적인 주제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건강의 의미는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질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그 질병이 허용하는 한 그 질병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건강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 땅에서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적 충족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를 깨닫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비록 물질적 풍요로움은 부족하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깨닫는다면 이보다 더 복된 마무리는 없다. 호스피스가 지향하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호스피스 서비스에 있어서 죽음은 삶의 완성이고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은 인간 존엄성의 완성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이기에, 육체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완화치료와 더불어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관계를 완성하며 죽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심리적·영적 돌봄을 병행하게 된다. 심리적·영적 돌봄은 호스피스를 단순히 고통 경감 절차가 아닌 한 인간의 품위 있는 임종을 위한 서비스가 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현재 일부 호스피스 기관에서 자체 인력을 양성하여 심리적·영적 돌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고, 심리적·영적 돌봄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 또한 아직 수립되지 않은 형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삶에서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안내하는 죽음교육전문 과정인 싸나토로지(Thanatology, 삶의 지혜를 죽음에게 물어보는 학문) 교육이 사전에 실행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호스피스 제도는 없을 것이다. 일상을 살면서 물질적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그 예속으로부터 부단히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됨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6월 한 달 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다가, 이제는 신발에 짓 밟혀 마지막까지 온기와 향기를 제공하는 밤꽃의 모습에서 넉넉한 인정과 의연한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밤꽃의 삶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온라인뉴스팀/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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