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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에세이> 삼라만상의 색을 담은 흑유(黑釉)
[헤럴드경제=윤병찬 기자] 경기도 홍천군 서면에 위치한 가평요. 청곡(淸谷) 김시영(57)과 제자이자 두 딸인 자인, 경인씨가 20여 년간 한국 흑유도기(黑釉陶器)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흑유도기는 청자 또는 백자 가마에서 곁다리로 만들어지다가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진다.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미세한 불의 변화로 색깔이 결정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고, 흑색이나 적갈색은 음색으로 터부시된 탓에 일상에서는 쓰기 힘들어 맥이 끊겼던 것이다.

김시영 작가가 처음 흑유를 접한 것은 30여년전이다. 대학 산악부 동아리에서 등반하다 화전민 터에서 나온 파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뒤로 흑유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연구를 시작해 1991년 대학원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가평요를 차렸다. 흑유를 시작하고 10년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마에 불을 지폈다. 처음엔 실패를 거듭했다. 마음에 드는 색을 찾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분청은 가마 온도가 1230도, 청자는 1270도, 흑유도기는 1300도에서 구워진다. 오랫동안 불 앞에 있다 보니 기도 점막이 모두 말라 무호흡증으로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김 작가는 “청자와 백자는 색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흑유의 색은 무궁무진해요. 불의 온도나 굽는 방식에 따라 매번 다른 색이 나옵니다. 삼라만상을 담고 있는 고색창연한 색이 탄생할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숱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결과 경기도가 한 분야의 최고 장인에게 수여하는 ‘경기으뜸이’(1999년)로 선정되었고, 한국을 찾는 해외 국가원수에게 그의 작품이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도예가 김시영씨가 경기도 홍천에 위치한 공방에서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 그의 찻잔 하나가 100만엔(약 1000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작가의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누구도 흑유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두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흑자(黑磁)의 맥을 이어나가겠다고 자청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와 경기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한 큰 딸 자인씨와 서울대 조소과 졸업 예정인 작은 딸 경인씨는 흑자의 빛깔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번갈아가며 가마를 지키고 있다.

김 작가는 “흑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더 대중화되고 연구도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며 “현대 도예에서도 다양한 발전이 가능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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