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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심야식당’ 고바야시 카오루 “현실엔 없는 식당이지만, 힘이 됐으면…”
모두가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각, 그제야 문을 여는 가게가 있다. 이름하여 ‘심야식당’. 메뉴는 돈지루(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은 된장국) 정식과 맥주·소주·사케 뿐이다.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주인장이 솜씨껏 만들어준다. 문어 모양의 소시지를 비롯해 계란말이, 버터라이스, 바지락술찜 등 소박한 요리가 탁자 위에 오른다.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 이상이다.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리운 가족과 친구, 사랑했던 연인을 추억하게 하는 매개체인 까닭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데우기만 하면 되는 꽁치조림 통조림을 요리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 싶은 건지 모른다. 
일본의 ‘국민배우’ 고바야시 카오루가 영화 ‘심야식당’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여행한 일은 있지만, 공식 일정으로 내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심야식당’의 소박한 가정식이 손님에게 위안을 주 듯, 관객들도 영화를 통해 따스한 위로를 얻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드라마 ‘심야심당’은 지난 2009년 일본 TBS를 통해 방영됐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가정식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어느덧 3번째 시즌까지 이어졌고, 국내에서도 팬들이 늘어갔다. ‘심야식당’의 인기 중심엔 단연 배우 고바야시 카오루(64)가 있다. 일본의 대표 배우인 그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최근 영화까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마스터’로 살아왔다.

‘심야식당’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고바야시 카오루를 만났다. 심야식당의 주방을 들락거리며, 실제 그의 요리 실력도 수준급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원래 요리를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필요한 장면마다 직접 요리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의 조리법을 습득했고, 재료를 썰거나 볶을 때 팔뚝만 클로즈업 돼도 직접 조리 기구를 들었다. 다만, 손님상에 오르는 완성품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솜씨다. 완벽한 비주얼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이이지마가 만든 음식은 정말 맛있다”며 “손님 역의 배우들이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맛있게 먹더라. 그에 비하면 내가 만든 건 먹을만 한 유사품 정도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영화는 ‘나폴리탄’, ‘마밥’, ‘카레’ 3가지 음식에 얽힌 손님들의 사연으로 채워진다. 일본식 스파게티인 ‘나폴리탄’은 사랑에 좌절한 여자와 순박한 청년의 연애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도시 생활에 지친 시골 소녀에겐 마를 갈아서 밥에 올려먹는 ‘마밥’이 위안을 준다.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진 남자에게 ‘카레’는 삶의 희망을 되찾게 해 준 음식이다. 한국인에게 낯선 ‘나폴리탄’과 ‘마밥’이 일본에선 어떤 의미의 음식이냐고 물었더니, 고바야시 카오루는 과연 ‘마스터’다운 진지함으로 한참을 설명했다. 통역사의 메모가 노트 두 장을 채웠다. 

“같은 일본인이라도 세대나 지역에 따라 음식에도 차이가 있어요. 나폴리탄은 보통 찻집에서 파는 점심 메뉴예요. 마쓰오카 감독이 나폴리탄에 계란 프라이가 들어간다길래 ‘그게 말이 되느냐’고 했는데, 감독님의 고향인 나고야에선 그렇게 먹는 모양이더라고요. 마밥은 일본에서 소바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죠. 한국에서의 인삼 정도는 아니지만, 기운을 나게 하는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영화에서처럼 젊은 아가씨가 마밥을 먹고 싶어 하는 건 드문 일이죠. 젊은이들에겐 친근한 음식이 아닐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일본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음식이 바로 마밥이예요.”

나폴리탄과 마밥, 카레는 낙담하고 외로운 이들의 위장과 마음 모두를 든든히 채워준다. 그렇다면 ‘힐링 푸드’를 만들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제 이야기는 하지 않는 ‘마스터’는 어떻게 마음의 허기를 달랠까. 마스터의 사생활이야 베일에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지만, 그를 연기한 고바야시 카오루의 이야기는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가끔 동료 배우나 일반인 친구와 술 한 잔 할 때가 있다”며 “남들이 보면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외로운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코바야시 카오루는 지난 1월 ‘심야식당’의 일본 개봉 당시 인상 깊었던 관객 반응을 전했다. 20~30대 일하는 여성들이 ‘심야식당 같은 곳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는 것. 특히 전문직 여성들의 경우 늦은 시각까지 일할 때가 많은데, 밤 늦게 출출하거나 술 생각이 나도 혼자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고. 그는 “‘심야식당’이 현실에는 없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작은 영양제를 얻어가는 것 같은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그는 대중들을 위로하고 치유해 온 ‘심야식당’의 존재가 자신에게 남긴 의미를 되새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 작품이나 배역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 깊게 생각해 보진 못했지만, 뛰어난 스태프,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죠. 일본에서 인기 배우인 무카이 오사무가 ‘한 씬이라도 좋으니 우리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세 번째 에피소드에 손님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어요. 또 현장엔 촬영이 늦게 끝나면 혼자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젊은 배우들도 있었고, 존경할 만한 연륜 있는 배우들도 있었죠. 제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속에 ‘심야식당’이 준 경험과 만남들이 침전돼 있을 것이고, 그 기억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도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해요.” [사진 제공=엔케이컨텐츠]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고바야시 카오루는? 출생=1951년 9월 4일 일본 쿄토 / 데뷔=1980년 영화 ‘외톨이 맹인소녀 오링’ / 대표작=드라마 ‘나니와 금융도’(1996), ‘닥터 고토 진료소’(2003), ‘도쿄타워’(2006), ‘심야식당’(2009), 영화 ‘비밀’(1999), ‘퀼’(2004) 등 / 수상=제31회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남우조연상, 제30회 요코하마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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