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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ㆍ공포ㆍ오버?…‘마스크’로 본 대한민국의 자화상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로 대한민국이 마스크로 뒤덮였다. 마스크가 거리에 범람하게 된데에는 정부의 불투명하고 무능한 메르스 대응의 영향이 크다.

세월호 참사 이후 키워드가 됐던 ‘가만 있으라’는 말이 국민들 머리 속에 여전히 새겨진 상황에서 메르스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 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정부의 불투명하고 일관되지 못한 메르스 대응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는 셈이다. 

별것 아니라던 공언과 달리, 보건당국 수장의 마스크 쓴 모습은 국민의 불신과 불안의 크기를 더욱 키웠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는 인간이 암도 완치시키는 의학을 발전시켜 놓고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과의 생존 전쟁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임을 환기시켜주는 사물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닥친 마스크 열풍도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지만, 바이러스 하나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단 분석이다.
메르스 공포로 대한민국을 뒤덮은 마스크 열풍은 정부의 불투명하고 일관되지 못한 메르스 대응에 대한 불신을 대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키워드가 됐던 ‘가만 있으라’는 말이 국민들 머리 속에 여전히 새겨진 상황에서 메르스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 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셈이다. yoon4698@heraldcorp.com

▶정부 불신의 아이콘=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메르스 감염 우려로 시중의 마스크 등이 동이 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굳이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정작 문 장관 본인은 지난달 23일 메르스 검역 상황 점검 차 인천공항 방문했을 당시 방역마스크를 착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트위터 상에서는 ‘나만 살면 되는 고위 공무원의 클래스(@min*****)’, ‘문형표는 마스크도 쓸 필요 없댔죠. 유언비어 유포자, 공포조장자는 박 정부잖아(@hal*****)’ 등 비판이 쏟아졌다.

문 장관의 마스크 사진은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의 공식 발표를 곧이곧대로 듣지 말아야 주요 근거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러는 동안 성능 좋은 마스크는 어느새 없어서 못 구하는 희귀품이 돼 버렸다. 실제로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만 권장되고 실제 착용 시에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N95(미세입자 차단율 95%) 마스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나오는 족족 매진되고 있다.

경기 일산의 한 약사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아버지는 하루에만 2∼3번씩 약국을 왔다 갔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아내가 ‘이 마스크가 아니다. 최소 KF80 수준 이상의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라며 “정부 발표와 무관하게 성능 좋은 마스크를 챙겨주는 게 자식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함께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높아져 사회적인 불안감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공포로 대한민국을 뒤덮은 마스크 열풍은 정부의 불투명하고 일관되지 못한 메르스 대응에 대한 불신을 대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키워드가 됐던 ‘가만 있으라’는 말이 국민들 머리 속에 여전히 새겨진 상황에서 메르스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 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셈이다. yoon4698@heraldcorp.com

▶마스크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마스크 착용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각기 다르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극심한 반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 또한 마스크를 바라보는 태도에 반영돼 있다.

실제로 마스크 착용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마스크를 쓰면 ‘오버한다’고 쳐다보는 분위기에 마스크 착용을 주저하게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며칠 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한 마트에 들렸다는 A씨는 계산대 앞에서 초면의 다른 여성으로부터 “왜 굳이 마스크하느냐,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었다며 황당해했다.

A씨는 “그럼, 마스크를 벗고 기침을 하고 다니면 좋으시겠냐”고 대꾸했다면서도, 감염을 막기 위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행동이 왜 이런 타박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B씨는 “마스크를 쓰면 손님들이 불쾌감을 느낄 것”이라는 매니저의 말에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B씨는 “나라면 아르바이트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것을 보고 위생 관리에 철저한 곳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마스크도 ‘빈부격차’=마스크 열풍 속에는 갈수록 심화되는 청년 실업, 빈부격차의 이면도 담겨있다.

올해는 최악의 황사와 미세먼지에다 메르스 사태까지 더치면서 마스크 매출이 지속적으로 급증했다.

G마켓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본격 불거진 지난달 20일부터 6월7일까지 약 2주 남짓 기간에 황사 마스크 판매는 직전 2주간 대비 30배 가량 증가했다. 또 편의점 세븐일레점의 경우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일주일간 지하철 역사 내 마스크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약 20배 늘었다.

그런데 그 가격은 천차 만별이다. 2000원대 일반 마스크는 물론 성능이 좋다는 6만원짜리 마스크까지 가지각색이다. 불안한 마음이 큰 만큼 기왕이면 비싼 가격의 마스크가 선호되지만 주머니가 가벼워운 이들에게는 하루 쓰고 버려야 하는 2000원 짜리 마스크도 부담이다.

이에 마스크를 ‘재활용’ 하는 사례까지 빚어지고 있다. 의학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충남에서 상경해 서울 고시원에서 생활한다는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인터넷을 통해 감염 예방 성능이 좋다는 마스크를 구매하려 했지만 가격이 부담이었다”며 “면 마스크 하나를 사서 매일 빨아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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