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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경의 맘다방] 내 아이만큼은 벤틀리?
[HOOC=김현경 기자] 어린 시절 저에겐 자동차 한 대가 있었습니다. ‘붕붕카’라고 하는 수동 자동차였죠. 1만원 짜리 작은 자동차였지만 붕붕과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바퀴가 다 닳도록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고, 몸이 자라서 끼일 때까지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붕붕카를 넘어 자동으로 가는 ‘유아전동차’까지 있더군요. 차체도 붕붕카보다 훨씬 크고 진짜 자동차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 똑같은 외관입니다. 가죽으로 된 시트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은 ‘브랜드’입니다. 벤츠부터 아우디, BMW,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가의 외제차 브랜드가 그대로 적용돼 있습니다.

가격은 싸게는 20만원대부터 비싼 것은 100만원이 훌쩍 넘습니다. 붕붕카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유아전동차 판매업체들은 브랜드를 내세워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합니다. ‘내 아이만큼은 벤틀리’, ‘내 아이의 첫 차 벤츠’ 등의 문구로 부모들을 유혹합니다.

이런 문구들은 ‘나는 못 입고 못 먹어도 내 아이는 최고로 입히고 먹이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나는 못 타더라도 아이에겐 아우디를 태워주고 싶고, 아이가 람보르기니를 타고 나가 다른 아이들에게 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싼 가격에도 사주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타고 있는데 내 아이만 못 타면 미안해지는 마음도 작용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브랜드가 뭔지, 값이 얼마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자동으로 가는 차가 신날 수도 있겠지만 수동으로 가는 붕붕만 태워줘도 신나게 잘 놉니다.

아이가 전동차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이 붕붕카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보다 더 크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아이들은 크건 작건, 비싸건 싸건 관계 없이 자기가 꽂히는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내 아이의 첫 차가 벤츠(유아전동차)였다고 마지막 차가 벤츠(실제 자동차)가 되란 법도 없습니다. 벤츠를 타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고요.

물론 비싼 전동차를 사주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부모의 선택이니까요.

다만 고가의 장난감을 선뜻 사주기 쉽지 않은, 저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는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지보다 부모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를 더 기억할 테니까요.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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